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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1일전

자존감의 본질


“자존감은 느낌이 아닙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자존감이라는 단어를 너무 쉽게 입에 올립니다.
“자존감을 높여야지.” 

“나는 자존감이 낮은 것 같아.” 

“셀프케어가 필요해.”


하지만 정작 ‘자존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설명해보라고 하면 막막해집니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요?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일까요? 

거울 앞에서 “나는 괜찮아”를 외치는 사람일까요?


많은 사람들이 착각합니다.


자존감은 마치 감정이나 기분 상태처럼 여겨집니다.
“나는 지금 자존감이 좀 떨어졌어.”
하지만 본질적인 자존감은 [감정]이 아닙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떻게 [행동]하느냐로부터 만들어집니다.


  • 내가 나에게 어떤 말을 건네는지
  • 내가 나의 가능성을 얼마나 믿는지
  • 내가 나의 한계를 어떻게 대하는지
  • 내가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어떻게 이끌어주는지를 보면


자존감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쉽게 말해, 자존감은 거울 앞에서의 자기 암시가 아니라 하루를 살아가는 태도에서 증명되는 실천의 결과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심리학 책을 읽고, 운동하고, 명상하고, “나는 소중해”를 반복해서 읊어도 정작 내가 스스로에게 실망하고, 회피하고, 무시하고 있다면 그 말은 마음 깊은 곳까지 닿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내 잠재의식은 알고 있기 때문이죠.

“말은 그렇게 해도, 넌 나를 믿지 않잖아.”


그래서 오늘, 우리는 자존감에 대해 새롭게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자존감은 추상적인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나를 대하는 작은 행동의 반복에서 만들어진다는 것.
그리고 그 반복을 바꾸는 순간, 당신의 자존감은 완전히 다른 궤도에 올라서게 될 것입니다.





나 자신을 대상화해봅시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비교의 순간을 맞이합니다.

SNS 피드를 열면 화려한 삶을 사는 사람들
TV에서는 성공한 인플루언서와 셀럽들
심지어 가까운 친구나 동료까지도


자신보다 더 나아 보이는 모습으로 다가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세 가지 방식으로 반응하곤 합니다.

  1. 따라잡기 위해 애쓰거나
  2. 그저 부러워만 하거나
  3. 상대의 단점을 찾아내며 스스로를 위로하거나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하지만, 속에서는 ‘나는 왜 저 사람만큼 되지 못할까?’ 하는 결핍의 시선이 생깁니다.
이 결핍은 결국 자기 비난으로 이어지고, 자존감은 조용히, 그러나 꾸준히 무너져갑니다.


하지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봐야 합니다.

“나는 지금,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자존감은 남들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느냐보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느냐’에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관점을 뒤집어봅시다.

세상의 시선에서 벗어나, 제3자의 시선으로 나 자신을 대상화해보세요.

마치 영화를 감상하듯, 나라는 사람을 조금 멀리서 바라봅니다.
내가 하는 말, 행동, 선택, 태도를 관찰자처럼 지켜보는 거죠.

그 순간, 당신은 알게 될 겁니다.


당신이 지금,

  • 완벽하지 않아도 진심을 다해 하루를 살아가고,
  • 수많은 불안 속에서도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스스로를 존중할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라는 것을.


반대로,

  •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거나,
  • 두려움에 갇혀 계속 미루고 회피하고 있다면,
    그 어떤 명언이나 셀프토크도 진짜 자존감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자존감은 말이 아니라 [행동]에서 만들어집니다.
자존감은 감정이 아니라 관점과 태도에서 생겨납니다.


그러니 묻습니다.

당신은 오늘, 나 자신에게 어떤 행동을 해주었나요?


아무도 보지 않아도 스스로에게 떳떳한 선택,
결과가 보장되지 않아도 해보는 용기,
남들과 비교하지 않고 어제의 나보다 나아지려는 태도


바로 이런 작은 행동들이 쌓여 우리는 어느 날, 조용히 말할 수 있게 됩니다.


“그래, 나는 나를 존중할 수 있어.”

그리고 그게 자존감의 시작입니다.





자존감의 유일한 증거는 [행동]


우리는 자존감을 감정으로 착각합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자존감이 높아진 것 같고,
기분이 나쁘거나 일이 잘 안 풀리면 자존감이 낮아진 것처럼 느끼죠.


하지만 진실은 그 반대입니다.


자존감은 기분의 산물이 아닙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에게 증명한 행동의 누적입니다.


아무리 "나는 괜찮은 사람이야"라고 마음속에서 되뇌어도, 막상 중요한 순간에 피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고, 자신과의 약속을 반복해서 어긴다면 그건 뇌 깊숙한 무의식에 이렇게 저장됩니다.


“나는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그 순간부터 자존감은 떨어지기 시작합니다.
아무리 긍정적인 셀프토크를 해도 효과가 없고, 그럴수록 더 큰 동기부여나 자극을 찾아 헤매게 되죠.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마주하게 됩니다.

자존감은 말이 아니라, 기록입니다.


내가 나를 어떻게 대했는지에 대한 ‘기록’ 그게 행동입니다.


혼자 무서워도 나가서 헬스장 문을 연 적이 있는가?
누군가에게 꺼내기 힘든 말을, 떨리는 손으로라도 적어본 적이 있는가?
하고 싶지 않았지만, 해야 해서 작은 한 걸음을 내디뎠던 적이 있는가?


이것들이 쌓이면, 어느 날 문득 이런 내면의 목소리를 듣게 됩니다.


“나는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나를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이 믿음은 자기 확신의 뿌리가 되고, 그 뿌리는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삶의 기반이 됩니다.


반면에…


생각만 하며 시간을 보내고
매일 미루고,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회피한다면,

아무리 좋은 강연을 들어도,
아무리 명언을 암기해도,

자존감은 생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이 당신을 아직 신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존감은 느낌이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한 ‘기록’에서 탄생합니다.


  • 불안하지만 전화기를 들었던 그 순간
  • 피하고 싶었지만 마주 앉아 말했던 그 대화
  • 도망가고 싶었지만 일단 마무리했던 그 과제 
  • 그 모든 순간은 당신이 당신을 조금 더 신뢰하게 만들었습니다.


그게 바로 자존감입니다.

자존감은 화려하지 않습니다.
SNS에 올릴 만한 그림도 아닙니다.


하지만 자존감은 조용하고 묵직하게 당신의 중심을 잡아줍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증거입니다.
그리고 그 증거는 ‘행동’이라는 이름의 축적된 선택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존감을 높이고 싶을 때 먼저 물어야 합니다.

“최근 나는 어떤 행동으로 나를 대했는가?”
“그 행동이 내가 나를 존중하는 방식인가, 회피하는 방식인가?”


이 질문을 반복할수록,
당신은 점점 정직한 자존감을 가지게 됩니다.
그 누구의 평가도, 외부의 인정도 필요 없는 ‘내가 나를 신뢰하는 힘’ 말입니다.





하지만 왜 우리는 행동하지 못할까?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무언가를 바꾸려면 행동해야 한다는 걸.

그런데 왜, 우리는 여전히 가만히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게으르다고 자책합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이 아닙니다.
당신이 게으른 게 아니라, 감정이 무겁기 때문입니다.

두려움, 불안, 비교, 무기력...

이 감정들은 중력처럼 우리의 몸과 마음을 눌러 붙잡습니다.
움직이려다 주저앉고,
도전하려다 한숨 쉬며 물러서고,
결국엔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에게 실망하게 됩니다.


이 악순환은 자존감을 갉아먹고,
그 자존감의 부재는 또다시 행동을 막습니다.

하지만 이건 ‘의지 부족’이나 ‘노력 부족’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건 에너지 상태의 문제입니다.

감정이 정리되지 않으면,
내면의 에너지는 방향을 잃고 흩어지며,
엔트로피 상태 — 즉, 혼란의 상태로 빠지게 됩니다.


당신의 뇌는 이미 수많은 불안과 압박으로 과열되어 있고,
감정은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해 에너지 흐름을 막아버립니다.

이런 상태에서 아무리 다짐을 하고, 목표를 세우고, 자기암시를 외쳐도 행동은 절대 오래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의 바닥이 흔들리면 몸은 절대 움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행동은 의지가 아니라, 정돈된 에너지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흐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행동을 강요하거나 푸시할 게 아니라, 먼저 에너지 상태부터 다뤄야 합니다.


  • 억눌린 감정을 바라보고,
  • 비교에서 오는 긴장을 내려놓고,
  • 머릿속 소음을 줄이는 것.


이러한 감정 해소와 에너지 정리는
결국 당신을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다시 복원해줍니다.

행동이 멈춰 있는 지금, 문제는 당신의 의지가 아니라 당신 안의 에너지 흐름일 수 있습니다.





행동을 유도하는 새로운 공식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우리는 다시 ‘움직이는 나’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의지’나 ‘동기부여’가 부족해서 행동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진실은 다릅니다.
진짜 문제는 ‘힘을 빼는 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행동은 끌어올리는 게 아니라, 흘러나오는 것입니다.
즉, 억지로 밀어붙일수록 멀어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힘을 빼는 행위] → [이미 가진 자의 상태] → [행동 유발] → [결과 생성]


행동은 두려움을 이겨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에너지가 ‘정돈된 상태’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현상입니다.

그러니 먼저 해야 할 일은 ‘힘 빼기’입니다.


  • 조용히 혼자 걸어보세요.
  • 가볍게 숨을 느껴보세요.
  • 명상이나 스트레칭, 정리 운동으로 몸을 풀어보세요.


이처럼 몸과 마음이 이완되기 시작하면, 놀랍게도 당신 안에서는 ‘이미 가진 자’의 감정이 올라옵니다.

여유, 충만함, 안정감, 그리고 평온함.


이 상태야말로,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거나 비교하지 않아도 되는 진짜 나의 에너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충만함 위에서 출발한 행동은
노력처럼 보이지 않지만, 결과는 놀라울 만큼 빠르고 가볍습니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싶다면
“내가 얼마나 괜찮은 사람인지” 설득하려 하지 말고,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에 집중해보세요.

그리고 그 행동조차 어렵다면, 억지로 시도하지 말고 우선 당신 자신을 이완시키는 것부터 시작하세요.


  • 잠깐 걸어도 좋고,
  • 5분 명상을 해도 좋고,
  • 일기를 쓰거나 심호흡을 해도 좋습니다.


그 평온함 위에서 한 가지 아주 작은 행동을 해보세요.
그 작은 움직임이 쌓이면, 당신은 더 이상 ‘자존감을 회복해야 할 사람’이 아니라,
이미 스스로를 존중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겁니다.





정리


우리는 자존감을 마치 ‘느낌’처럼 착각하지만, 진실은 정반대입니다.
자존감은 내가 나 자신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를 반영하는 '행동의 총합'입니다.


나는 나를 응원하고 있는가?
나는 두려움 속에서도 나를 믿고,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자신 있게 “그렇다”고 답할 수 있게 되는 순간,
당신은 더 이상 자존감을 ‘채우려는 사람’이 아니라,
이미 자존감을 살아내는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그 시작은 거창하지 않습니다.


  • 잠깐의 산책,
  • 5분의 명상,
  • 1개의 푸시업,
  • 1줄의 일지 기록…


이런 작고 반복되는 행동들이
“나는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내면의 확신을 만들어 줍니다.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닙니다.
감정 에너지의 흐름이 막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억지로 밀어붙이지 마세요.

힘을 빼고, 감정을 다스리고, 나를 이완시키는 것.

이게 자존감 회복의 본질입니다.

오늘부터는 ‘나를 설득’하지 말고,
나를 위해 움직이는 사람이 되어보세요.
그 순간, 자존감은 저절로 따라올 것입니다.


-젠틀맨

관리자
1일전

“당신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나요?”


아마도 이 글을 읽는 동안에도, 머릿속에는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고 있을 겁니다.
“이 말은 맞는 걸까?”, “난 오늘 뭘 해야 하지?”, “어제 그 말, 괜히 했나?”


이처럼 우리는 하루에도 수천 가지 생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생각이 곧 ‘나’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던져봅시다.
생각은 정말 ‘나’일까요?


정말 내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목소리일까요?
아니면 내가 억누른 감정이 만들어낸 잔상일까요?

우리는 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배워왔습니다.


하지만 그건 진실의 전부가 아닙니다.
진실은 그보다 훨씬 더 단순하고, 더 근본적입니다.


우리가 ‘나’라고 믿는 자아는 대부분 생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은 감정이라는 에너지의 파동이 만들어낸 부산물입니다.


즉, 당신이 지금 머릿속에서 듣고 있는 그 생각들, “난 부족해”, “난 무너질지도 몰라”, “이건 잘 안 될 거야”라는 소리들은 억제된 두려움, 억울함, 죄책감, 분노 같은 감정들이 '논리'라는 껍데기를 쓴 채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감정이 만든 가짜 시뮬레이션을 ‘현실’이라 믿고 있습니다.

실제 현실은 감정이 흐르는 방향, 즉 내면에서 어떤 에너지가 작용하고 있는가에 따라 만들어집니다.


즉, 우리가 생각으로 만들어낸 현실이 아니라, 내면 깊이 눌려 있던 감정 에너지가 외부 현실을 투사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삶을 바꾸려면 생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일으키는 감정을 먼저 정화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질문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끊임없이 생각하는 존재인가?
아니면, 그 생각을 관찰하고 있는 존재인가?


이제부터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가장 바깥의 껍데기인 몸, 그 내부의 감정 에너지, 그리고 우리가 진짜라고 믿고 있는 ‘생각’의 허상성에 대해 하나하나 분해하고 살펴볼 것입니다.


당신이 진정한 ‘나’의 본질에 다가가고자 한다면, 생각은 결코 답이 아닙니다.
오히려 생각을 넘어선 그곳에 진실이 있습니다.





신체 분해 > 에너지


“내가 몸이라고 믿었던 것은 실은 허상 위의 에너지입니다.”


우리는 ‘나’라고 말할 때 대개 이 몸을 떠올립니다.
거울에 비친 얼굴, 팔과 다리, 가슴의 두근거림, 위장의 허기, 피부에 닿는 감각들.


하지만 정말 이 몸이 '나'일까요?

이제 몸을 하나씩 해체해봅시다.


1. 몸은 장기들의 묶음입니다.

심장이 뛰고, 폐가 숨 쉬고, 위가 음식을 소화하죠.


2. 장기를 분해하면 세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약 37조 개의 세포가 존재합니다.
각 세포는 생명 활동을 수행하지만, 스스로 “나”라는 인식은 없습니다.


3. 세포는 분자(molecule)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백질, 탄수화물, 지질 같은 분자들입니다.


4. 분자는 다시 원자(atom)로 구성됩니다.

수소, 탄소, 질소, 산소 등의 원자들이 결합하여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죠.


5. 원자 안을 들여다보면?

그 안에는 놀랍게도 99.9999999%가 빈 공간입니다.
핵과 전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먼 거리로 떨어져서 회전하고 있으며,
그 안에 있는 것은 물질이 아니라 '진동하는 에너지장'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 몸의 본질은?

단단한 고체처럼 보이지만 실은 ‘고속으로 진동하는 에너지’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리고 이 진동을 바꾸는 힘이 바로 [감정]입니다.


감정 = 에너지의 진동 주파수

  • 두려움을 느끼면? 몸이 움츠러들고, 에너지는 수축합니다.
  • 분노를 느끼면? 에너지는 날카롭게 솟구칩니다.
  • 슬픔은 아래로 가라앉고,
  • 사랑은 부드럽고 따뜻하게 확장됩니다.
  • 충만함은 마치 전신에 전기가 도는 듯한 에너지 파동이 일어납니다.


당신은 이 에너지의 주파수를 "느낌"이라는 감각으로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즉, 당신은 몸이 아니라 감정을 통해 에너지를 진동시키는 의식 그 자체입니다.


생각은 이 에너지의 부산물일 뿐 몸이 감정을 기반으로 진동할 때, 뇌는 그 에너지를 해석하고자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하지만 이 생각은 대부분 감정을 설명하거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한 허상적인 내레이션일 뿐이죠.


예를 들어:

  • “망하면 어쩌지…” → 두려움
  • “나는 못난 사람이다…” → 수치
  • “복수해야 돼.” → 분노
  • “왜 나만 안돼?” → 욕망


이 모든 생각은 감정이 먼저 있고, 그 감정이 생각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기보다, 감정을 흘려보내야 진짜 변화가 일어납니다.


나는 몸이 아니라, 생각도 아니고, 감정을 인식하는 ‘의식’ 그 자체입니다.

우리는 몸을 분해했더니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단지, ‘에너지의 흐름과 진동’만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그 흐름을 조율하는 것이 당신의 감정이며, 그 감정을 바라보는 자가 바로 당신의 영혼, 진짜 나입니다.





뉴턴 제3법칙 : 작용 반작용 법칙


“우주는 당신의 내면 상태에 정확히 반응합니다.”


뉴턴의 제3법칙을 다시 기억해 봅시다.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벽을 밀면 벽도 나를 미는 것처럼, 내면에서 보내는 에너지도 현실이라는 방식으로 나에게 되돌아옵니다.

단지 벽이 아니라, 사람, 사건, 돈, 건강, 타이밍으로요.


감정은 곧 ‘작용’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백 번씩 감정이라는 에너지를 세상에 ‘작용’시킵니다.

  • “왜 나만 안돼” → 결핍 에너지 발사
  • “쟤는 나보다 잘났어” → 비교 에너지 발사
  • “나는 반드시 성공할 거야” → 통제 욕구 발사
  • “나는 지금 이 순간도 충분해” → 사랑과 수용의 에너지 발사


여기서 중요한 건, 우주는 당신이 말한 ‘내용’이 아니라, 그 밑에 깔린 ‘감정의 진동’을 읽습니다.


감정의 진동 = 당신 현실의 기초 진동

“내가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느냐가 바로 내 현실에 작용되는 주파수다.”

감정

작용 에너지

현실에서의 반작용

두려움

수축, 경직

막힘, 통제당함, 제한

분노

저항, 폭발

갈등, 피로, 반복충돌

무기력

정지, 냉각

무의미, 지연, 피폐함

사랑

팽창, 포용

기회, 행운, 연결

평온함

확장된 흐름

타이밍, 직관, 창조성


당신이 ‘현실이 반복된다’고 느낀다면, 당신의 감정도 같은 방식으로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현실이 막힐까요?


우리의 내면에는 어린 시절부터 쌓인 미처 흘러가지 못한 감정들이 뭉쳐 있습니다.
이걸 심리학에서는 ‘감정 에너지 블록 = 그림자’이라고 부릅니다.


  • 억눌린 슬픔,
  • 처리되지 않은 분노,
  • 설명할 수 없는 열등감.


이 감정 에너지 덩어리가 몸속에서 ‘막힘’으로 고착되면, 우주는 그것에 ‘정확히 상응하는 현실’을 보냅니다.

돈이 막히고, 관계가 왜곡되고, 몸이 아프고, 시간이 도망갑니다.

왜냐면 당신이 내면에서 이미 그 ‘막힘’이라는 작용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단 하나: 감정을 ‘흘려보내는 것’

감정은 억누를수록 강해지고, 직면할수록 사라집니다.


당신이 두려움을 느끼고도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그래, 두려워” 하고 인정하는 순간— 감정 에너지는 방향을 바꿉니다.
축적 → 순환 → 해소 → 정화 이것이 곧 감정의 반작용을 치유적 현실로 전환시키는 첫걸음입니다.


명상은 그 어떤 도구보다 감정 에너지의 흐름을 ‘관찰자 시점’으로 전환시켜주는 기술입니다.
우리는 명상을 통해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판단하지 않고, 그저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감정이 바닥나고 나면, 우리의 기본 상태는 다시 +감정, 충만함, 확장된 에너지로 돌아갑니다.


당신이 세상에 작용한 감정은 반드시 반작용으로 되돌아옵니다.

그 감정이 두려움이었는지, 아니면 사랑이었는지, 그것이 당신의 현실을 만드는 유일한 공식입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려 하지 마세요.
감정을 다루는 법부터 배워야 합니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현실을 통제하는 사람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하는 사람이 됩니다.





생각의 매커니즘


“당신은 생각하는 존재가 아니라, 감정을 해석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렇게 믿고 살아갑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그러나 이 명제는 너무 오래된 오류입니다.
현대 신경과학과 뇌파 분석, 감정 에너지 모델에 따르면 우리는 생각을 통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통해 존재를 ‘경험’하고, 그 감정을 해석하기 위해 생각이라는 언어를 빌릴 뿐입니다.


1. 생각은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감정이 만들어낸 ‘반응’이다.

우리의 뇌는 외부에서 들어온 자극을 직접적으로 ‘생각’으로 처리하지 않습니다.
가장 먼저 일어나는 반응은 감정적 파동입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무심하게 당신을 지나칠 때, 뇌는 그 장면을 인지하기 전에 잠재된 외로움·거절 트라우마에 의해 미세한 감정의 파동을 먼저 감지합니다.

그리고 이 감정을 정당화하거나 회피하기 위해 “쟤 왜 저래? 나 무시하나?” “역시 난 사람들한테 별로야…” 같은 생각이 자동 생성됩니다.


즉, 생각은 감정이 만들어낸 인지적 대본입니다.
감정이 먼저고, 생각은 그 감정의 자막일 뿐입니다.



2. 뇌는 감정 기반 시스템이다

뇌의 정보 처리 과정에서 가장 먼저 활성화되는 영역은 편도체(Amygdala)입니다.
이곳은 공포·분노·불안을 포함한 원초적 감정을 빠르게 반응시키는 시스템입니다.
그리고 이 감정 신호는 곧 전두엽(Prefrontal Cortex)로 전달되어 해당 감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생각’을 구성합니다.


예를 들면:

  • 공포가 감지된다 → “망하면 어쩌지?”
  • 수치가 올라온다 → “나는 안 돼. 왜 이렇게 못났지?”
  • 통제 욕구가 발동한다 → “이걸 안 하면 큰일 나.”


이 과정을 거치며 우리는 자신이 주체적으로 생각한다고 믿지만, 사실은 감정이 지시한 생각을 읽고 있을 뿐입니다.



3. 몸은 생각을 그대로 따른다

흥미롭게도 이 ‘감정 → 생각’의 흐름은
다시 몸으로 되돌아옵니다.


예를 들어:

  1. 감정: 두려움이 생긴다
  2. 생각: “망하면 어쩌지?”
  3. 반응:
    • 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을 분비하고
    • 심장은 빨라지고,
    • 위장은 긴장되고,
    • 손발은 차가워지고,
    • 호흡은 얕아집니다


결국, 몸은 ‘생각’이라는 언어로 포장된 감정 반응의 희생양이 됩니다.
다시 말해, 몸은 생각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되는 거죠.



4. 생각은 당신이 아니다

생각은 당신의 본질이 아닙니다.
그저 감정이 만들어낸 에너지의 반사파,
에고(상상계)가 살아남기 위해 만들어낸 자기보존의 대사입니다.


그리고 이 생각은

  • 현재의 순간에는 거의 존재하지 않고,
  • 대부분 과거를 후회하거나,
  • 미래를 통제하려는 형태로만 출현합니다.


그러니 당신은 생각이 아닙니다.

당신은 그 생각을 ‘지켜보고 있는 자각’,
그 모든 감정을 ‘그저 느끼는 자’입니다.


  • 감정이 없으면 생각도 없습니다.
  • 감정이 바닥나면, 생각도 멈춥니다.
  • 생각이 멈출 때, 비로소 당신은 진짜 당신의 자리에 앉을 수 있습니다.


그러니 생각을 바꾸려 하지 말고, 감정을 지켜보세요.
그 감정을 붙잡지도 말고, 거부하지도 말고, 그저 흘러가게 하세요.

그러면 당신은 처음으로, ‘생각하는 나’가 아니라 ‘존재하는 나’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솔루션 : 걷기 명상 운동


감정은 억누르거나 분석한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붙잡고 해석하려 들수록 더 커지고 복잡해집니다.
그 감정을 구성한 뿌리까지 덩어리째 휘말리게 되죠.


그러나 방법은 단순합니다.

감정은 '놓아두면' 사라집니다.
지켜보면, 바닥납니다.


예를 들어,

  • 두려움을 느낄 때 억누르거나 회피하지 않고,
  • 그냥 그 자리에 앉아 조용히 바라보세요.
  • 그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 판단도 멈추고, 그저 흘러가게 허용하세요.


그러면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감정은 더 이상 당신을 붙잡지 못하고, 침투적인 생각 수백 가지도 함께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침투적 사고(“망하면 어쩌지”, “나는 안 돼”, “이건 큰일이야”)는 감정이 만들어낸 부산물입니다.
감정을 놓아주면, 그 수백만 가지 생각이 함께 힘을 잃습니다.

왜냐하면 그 생각을 유지시키던 ‘감정의 연료’가 바닥났기 때문입니다.


감정은 날씨와도 같습니다.
오고, 머물다가, 사라집니다.
그것은 진짜 내가 아닙니다.


단지 내면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진짜 나는? 그 감정을 지켜보는 자,


침묵 속에서 존재하는 의식 그 자체, 영혼입니다.

영혼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습니다.
오직 감정만이 일어났다가 사라질 뿐입니다.


그래서 걷기와 명상, 운동이 필요합니다

걷기 명상, 루틴 운동 같은 신체 활동은 머리로 감정을 해결하려는 집착에서 벗어나 ‘몸을 통해 감정을 흘려보내는’ 가장 자연스러운 통로입니다.


  • 걷기 명상은 생각이 끊기는 틈을 만들어 줍니다.
  • 단순한 반복운동은 감정 에너지를 흘러가게 하는 배수로가 되어줍니다.
  • 명상은 판단 없이 감정을 수용하는 훈련의 도구입니다.


이 모든 실천의 전제는 단 하나입니다:

“감정을 수정하지 말고, 그냥 내버려두라.”


결론.

  • 감정은 당신이 아닙니다.
  • 생각도 당신이 아닙니다.
  • 당신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는 ‘의식’입니다.
  • 감정을 지켜보면 바닥나고, 생각은 사라지고,
  • 그 자리에 고요하고 충만한 진짜 나가 남습니다.


이제부터는 붙잡지 말고 흘려보내세요.
그게 가장 빠른 해방입니다.


-젠틀맨

관리자
2025-06-03

해마다 1월이 되면 어김없이 돌아오는 풍경이 있습니다.

헬스장에는 사람들이 몰리고, 인스타그램에는 "새해 다짐"이 넘쳐납니다.


"올해는 진짜 몸 만들어야지"
"이번엔 다르다"
"이젠 진짜 운동 루틴 만들어야지"


의욕에 가득 찬 사람들은 헬스장 신년 특가를 결제하고, 운동복을 사고, 프리웨이트존에 당당히 입장합니다.
첫날은 가슴운동, 어깨운동, 유산소까지 몰아서 합니다.
2시간을 미친 듯이 몰입하고 나면 스스로에게 뿌듯해 합니다.


"이 열정이면 진짜 되겠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아픈 건 가슴이 아니라 삼두…ㅋㅋㅋ


운동은 가슴을 했는데, 통증은 예상치 못한 곳에 옵니다.
그 순간부터 열정은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이거 제대로 하고 있는 거 맞나?’
‘내가 너무 무리한 건가?’
‘이걸 매일 어떻게 하지?’


이렇게 해서 작심 3일.
4일째부터는 피곤함을 핑계로 하루를 쉬고, 일주일이 지나면 “일단 다음 주부터 다시 시작하자.”


그리고 2주, 3주…
헬스장 출입기록은 조용히 사라집니다.


이것이 한국인의 대표적인 ‘운동 실패 공식’입니다.

반복되는 패턴.
반복되는 자책.
 

그리고 운동은 원래 어렵고, 좋은 몸은 원래 아무나 못 만드는 거라는 고정관념.

 

하지만 이 고정관념, 틀렸습니다.

상위 10%의 몸을 만드는 데 매일 2시간, 죽을 만큼의 열정, 정신력 같은 건 필요 없습니다.

식물에게 물을 한꺼번에 많이 준다고 해서 갑자기 폭풍 성장을 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과습으로 썩어 죽습니다.
몸도 마찬가지다.

몸은 단순하고, 반복 가능한 패턴 속에서 복리처럼 성장합니다.


그것도 “하루 20분”(주3~4일)이면 충분합니다.


중요한 건 열정이 아니라 지속성 (복리 효과를 누리기 위함)


의지가 아니라 시스템입니다.

몸, 부, 관계, 성과 — 이 모든 건 꾸준함이 복리로 쌓였을 때, 마지막 5% 구간에서 폭발적으로 변합니다.


그래서 저는 말합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열정이 아니라 ‘시스템’이고, 시간이 아니라 ‘설계’입니다.


하루 20분, 주 3~4회.


해당 사진은 제가 헬스를 시작한지 1년 8개월만에 일어난 변화입니다.

 
6개월만 저의 말을 믿고 나아가 보세요.
상위 10%의 몸은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지금부터, 그 ‘오래가는 몸’, ‘무너지지 않는 루틴’을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 함께 이야기해봅시다.





웨이트에 대한 고정관념 : 본질은 단순합니다


“몸은 고통과 땀으로 만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진리처럼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해마다 반복됩니다. 새해가 되면 신년 특가로 헬스장을 등록하고, 한 번에 2시간씩, 가슴 운동을 했지만 삼두가 아파오고, 작심삼일 만에 열정은 사라집니다.

1주, 2주, 결국 포기.


이건 개인의 의지 문제 이전에 잘못된 운동 인식의 결과입니다.
“운동은 열정과 고통으로 해야 한다”는 낡은 고정관념을 이제는 버려야 합니다.


몸도 생명체입니다. 식물처럼 다뤄야 합니다.

몸은 생명체입니다. 식물에 물을 더 준다고 빨리 자라는 게 아니듯, 근육도 과도한 자극을 주면 오히려 망가지고 성장하지 않습니다.


운동 초보들이 가장 흔히 빠지는 함정이 있습니다.
바로 “자극을 많이 줘야 근육이 성장한다”는 믿음입니다.


하지만 진실은 이렇습니다:

  • 과한 자극 → 미회복 → 피로 누적 → 운동 거부감
  • 결국 신체는 지치고, 마음은 멀어지며, 루틴은 무너집니다


반대로, 60~70% 수준의 가벼운 자극만 줘도 충분히 근육은 반응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조절된 자극은 회복 속도를 높이고, 같은 부위를 더 자주 훈련할 수 있게 만들어줍니다.


“자주, 가볍게, 꾸준히” 이것이 고수의 방식입니다

상위 10%의 몸을 가진 사람들은 단기간의 격한 운동이 아닌, 장기간의 구조화된 루틴으로 몸을 만듭니다.


그 핵심은 단순합니다:

  • 운동은 하루 20분이면 충분합니다.
  • 근육 손상의 정도는 60~70%면 적절합니다.
  • 과도한 피로 없이 ‘잦은 반복’이 가능해집니다.


가슴 운동을 주 1회, 120% 강도로 수행하는 대신
가슴을 주 2회, 60% 자극으로 나눠서 반복하는 편이 더 빠르고 효율적인 성장으로 이어집니다.


이 개념을 과학적으로 뒷받침하는 것이 바로 아래 두 가지 원리입니다.


1. 스트렝스 연속체 (Strength Continuum)

  • 무게와 반복 수에 따라 근육의 자극 방식이 달라집니다. (스트렝스, 근비대, 지구력)
  • 무겁게만 드는 것보다, 목적에 맞는 자극 강도와 반복 수를 활용해야 합니다. (선택과 집중이 없다면 망합니다)


2. 점진적 과부하 (Progressive Overload)

  • 근육은 반복된 자극에 적응하며 성장합니다.
  • 처음부터 100%로 시작하는 게 아니라,
    매주 아주 미세하게 무게, 횟수, 세트를 늘리는 것이 핵심입니다.
    처음엔 쉬워 보여도, 주당 1~2%의 증가만으로도 6개월 후 당신의 몸은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입니다.


운동은 마라톤입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폭발'이 아니라 '지속’입니다. 지속이 없다면 복리를 못 누립니다.

몸, 부, 관계 모두 ‘중도(中道)’ 속에서 본질을 실행할 때 후반부 5%에서 폭발적인 변화를 겪게 됩니다.


당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과한 열정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 가능한 20분 루틴을 설계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6개월, 하루 20분이면 충분합니다. 그 시간은 결코 짧지 않으며, 당신의 삶을 바꾸기에 충분합니다.

역설적으로 운동 시간이 길수록 운동을 못 하는 겁니다.





근성장을 위해 반드시 알아야 할 개념: 스트렝스 연속체 (Strength Continuum)


스트렝스 연속체란 무엇인가?


스트렝스 연속체는 "무게와 반복 수에 따라 자극되는 근육의 메커니즘이 다르다"는 과학적 개념입니다. 

이는 곧, "무조건 무겁게 들어야 근육이 생긴다"는 통념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개념에 따르면, 훈련의 목적에 따라 무게와 반복 수를 달리 조정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 근지구력 훈련: 근육의 체력과 혈류를 높임 (마라토너형 체형)
  • 근비대 훈련: 근섬유 성장에 초점을 맞춤 (보디빌더형 체형)
  • 스트렝스 훈련: 신경계의 효율 향상 (역도형 체형)

훈련 목적

중량 (1RM 대비)

1세트 당 반복 수

대표 효과

근 지구력

1rm의 40~60%

15~20회 이상

모세혈관 증가, 지구력 향상

근 비대

1rm의 60~80%

6~15회

근성장, 체형 변화

스트렝스

1rm의 80~100%

3~6회

신경계 발달, 최대 힘 증가


1RM이란? 한 번만 들 수 있는 최대 중량입니다. 

예를 들어 벤치프레스 1RM이 100kg이라면, 근비대 훈련은 60~80kg 구간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왜 이 개념이 중요할까요?


많은 사람들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시도하지만 얼마 안 가서 포기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자신에게 맞지 않는 방식으로 운동
  • 무작정 고중량을 시도하다 부상
  • 효과가 없으니 포기 (중간 탈락)


사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원하는 건 근비대(근성장)입니다.

복근이 보이는 몸, 탄탄한 팔, 벌어진 어깨, 선명한 등 모두 근비대 자극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잘못된 상식과 과도한 열정으로 무조건 고중량, 고통, 땀을 강조하다 보니 중간에 탈락하는 것이죠.

현실적인 전략: 똑똑하게, 꾸준하게 합시다.


근비대를 원한다면 다음 세팅을 지켜보세요:

  • 중량: 1RM의 60~80%
  • 반복 수: 6~15회
  • 세트 수: 3~4세트 (근육 당)
  • 쉬는 시간: 60~90초



제가 피트니스 코치로 활동하며 자주 받는 질문이 있습니다..


Q: 근비대만 하면 너무 커지지 않나요?

A: 걱정하지 마세요. 호르몬, 식단, 수면, 루틴이 완벽해야 보디빌더처럼 됩니다. 

일반인이 6개월간 꾸준히 근비대 훈련한다고 해서 갑자기 '헬창'이 되는 일은 없습니다. 오히려 여러분이 원하는 '워너비 몸'은 이 근비대 루틴에서만 나옵니다.


Q: 고중량 스트렝스 훈련은 안 해도 되나요?

A: 장기적으로는 스트렝스 사이클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초보자는 일단 6개월간 근비대 루틴으로 몸을 만들어놓고 난 뒤, 그 이후 주기화 전략으로 스트렝스 or 근지구력 블록을 섞으면 됩니다.


Q: 매일 운동해야 하나요?

  • A: 아니요. 주 3~4회 20~30분 투자로도 인생을 바꿀 수 있습니다. 핵심은 강도와 누적 피로 조절입니다.


결론은 단순한 전략이 최고의 무기입니다.

몸은 전략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고통, 노력, 열정만으로는 절대 되지 않습니다.


근비대라는 명확한 목표를 세우고, 스트렝스 연속체 원리를 이해한 뒤, 내 몸의 반응을 점검하면서 루틴을 짜세요. 

이게 바로 몸, 비즈니스, 삶 모두를 바꾸는 '복리 구조'의 시작입니다.


오늘부터 머리가 아닌 원리와 시스템으로 몸을 훈련하세요.
단 6개월이면, 당신은 상위 10% 몸을 가질 수 있습니다.





점진적 과부하 : 운동, 사업, 트레이딩, 관계 모두 적용되는 인생 치트키


근육은 강한 자극보다 “조금씩 더해지는 자극”에 반응합니다.
이 원리를 점진적 과부하(Progressive Overload)라고 부릅니다.

이 개념은 단순하지만 강력합니다.


오늘보다 내일, 아주 조금이라도 강한 자극을 주면 몸은 “살기 위해” 그 자극에 적응한다. 이게 바로 근육이 자라는 원리다.


근성장의 핵심은 “조금 더”의 반복.


처음 운동을 시작할 땐 가벼운 무게로도 자극이 옵니다.
하지만 같은 무게, 같은 반복 수로만 계속 운동하면 몸은 더 이상 변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위협”으로 인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매주 또는 매달, 무게를 1~2kg을 늘리거나 1~2회를 늘려야 합니다.
이 작은 변화들이 쌓이면 6개월 뒤 거울 속 몸이 달라집니다.


예로 벤치프레스 30kg으로 시작하는 사람의 변화를 살펴봅시다.


1주차엔 30kg으로 10회.
2주차엔 같은 무게로 12회.
3주차엔 32.5kg으로 다시 10회.


이런 식으로 점점 무게와 반복 수를 조금씩 올려나가면 근육은 자극에 적응하며 계속 성장합니다.

단, 매번 한계까지 하지 말고 1~2회 정도 여유를 남기는 것이 핵심입니다.


1~2kg를 무시하지 마세요. 1년만 꾸준히 한다면 52kg~104kg으로 수행능력이 향상됩니다.
그 여유가 있어야 회복할 수 있고, 자주 훈련할 수 있으며, 오래 지속할 수 있습니다.


“근육은 망가져야 자란다”는 잘못된 고정관념을 버리세요.


대부분 사람들은 "운동은 고통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 근육 성장에서 가장 중요한 건 ‘회복’이다.

쉴 때 근육이 생성됩니다. 과한 자극은 근섬유를 망가뜨릴 뿐 회복을 방해합니다.
반면 60~70% 수준의 적절한 자극을 주고 회복 기간을 확보하면 오히려 더 빠르고 지속 가능한 성장이 가능합니다.


매주 해야 할 일은 단 하나.


“내가 이번 주에 지난주보다 단 1%라도 성장했는가?”
무게를 1kg 늘렸든,
반복 수를 1회 늘렸든,
세트를 하나 더 했든,
기록을 하고 그 성장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단기적으로 보면 미미해 보이지만 이 1%가 쌓이면 12주 뒤 당신의 몸은 완전히 다릅니다.


초보자의 흔한 실패 루틴

  1. 첫날 2시간 열정 운동 → 근육통 → 이틀 쉬다 포기
  2. 무리하게 무게 증량 → 관절 통증 → 의욕 상실
  3. 기록 없이 그냥 느낌으로 운동 → 성장 확인 불가 → 의욕 하락

결과적으로 초기 과열 → 탈진 → 자책 → 포기 루틴이 반복


성공을 위한 실행 전략

  1. 무게와 반복 수는 기록한다.(일지 필수)
  2. 운동은 항상 “조금 여유” 있게 마친다. 힘을 남겨야 자주 훈련할 수 있다.
  3. 회복이 훈련의 절반이다.
    • 수면은 하루 7.5시간 이상
    • 단백질은 체중 × 1.5~2g
    • 스트레스 관리는 명상과 산책으로.
  4. 정체기가 오면 루틴을 바꿔서 다른 방식의 자극을 준다.
    예: 덤벨에서 머신으로, 고반복에서 중반복으로.


본질은 단순합니다:


근육은 격렬한 의지보다 작지만 지속적인 변화에 반응합니다.

한 번 열심히 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매주 1%씩 성장하는 사람은 드물죠.
그래서 점진적 과부하가 결국 1등을 만드는 방식입니다.

몸뿐 아니라 사업, 글쓰기, 관계도 이 원리로 성장한다.
매일 1%씩 깊어지고, 강해지고, 넓어지는 삶을 살아보세요.





당신이 원하는 몸, 결국 “지속 가능한 성장”의 결과다


많은 사람들이 시작은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빨리” 변하고 싶어서 몸이 감당할 수 없는 무게와 볼륨을 집어듭니다.
그러고는 탈진하고 포기. 매년 반복되는 작심삼일.

하지만 진실은 이것입니다.


몸은 “최고 강도”보다 “지속 가능성”에 반응합니다.

매주 1kg씩, 1회씩, 1세트씩.
이 미세한 성장이 쌓여 3개월 뒤, 6개월 뒤 완전히 다른 당신을 만듭니다.


‘워너비 몸’을 만든 사람들은 특수한 DNA를 가진 슈퍼인간이 아닙니다.
그저 점진적 과부하를 믿고, 조금씩 더하는 행동을 습관으로 만든 사람들입니다.


당신도 방법만 알면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변화는 6개월 안에 반드시 일어난다. 그 대신 오늘은 딱 1%만 성장하자.”


이 원리를 이해하고 지속하면, 당신의 몸은, 삶은, 관계는, 결국 원하던 모습으로 재편될 것입니다.

이제는 열정이 아니라 전략입니다.
과한 의지보다도 작고 꾸준한 실천이 더 강합니다.
몸 하나 바꾸지 못하면 인생도 바뀌지 않습니다.
반대로, 몸을 바꾸면 인생 전체가 바뀝니다.

오늘, 1%만 성장하세요.
그게 점진적 과부하의 전부입니다.


-젠틀맨

관리자
2025-06-03

불안? 나가서 걸으세요.

분노? 나가서 걸으세요.

답답함? 나가서 걸으세요.

에너지 부족? 나가서 걸으세요.

슬픔? 나가서 걸으세요.

 

대부분의 문제는 움직임으로 개선될 수 있습니다.


지금 당신은 ‘생각’이 아니라 ‘걸음’이 필요합니다

지금 당신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합니다. 해야 할 일도 많은데 손에 잡히는 게 없고, 자꾸 뒤처지는 것 같고, 어딘가 잘못된 것 같고, 불안과 무기력 사이에서 떠밀리듯 하루를 버팁니다.


그래서 생각합니다.
“내가 왜 이러지?”
“어떻게든 다시 컨디션을 회복해야 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그런데 저는 말하고 싶습니다.
이 질문의 해답은 머리에 있지 않습니다. 몸, 그중에서도 ‘발’에 있습니다.


머리가 멈춘 건, 몸이 멈췄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꼬인 건, 에너지가 흐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감정이 무너진 건, 지나치게 제자리에서 오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필요한 건 계획표가 아니라 걷기입니다. 셀프 분석이 아니라 걸음입니다. 


단 10분.
집 밖을 나서서 햇빛을 받고, 두 발로 바닥을 밟고, 들숨과 날숨을 의식하며 걷기 시작할 때 당신의 ‘진짜 감정’이 반응하기 시작할 겁니다.


오늘 칼럼은, 너무 단순해서 무시했던 ‘걷기’가 어떻게 당신의 잠재의식, 감정 회로, 신경계 전체를 재가동시키는지 그 놀라운 작동 원리를 풀어갑니다.





잠재의식의 특성 — ‘행동이 아니라 상태가 우선’


잠재의식은 ‘현재 이 몸의 상태’를 기준으로 현실을 평가합니다.

사람들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생각부터 바꾸려고 합니다.


긍정적인 생각, 셀프 어퍼메이션, 좋은 마인드셋. 하지만 잠재의식은 이런 말들을 신호로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잠재의식은 말이 아니라 신체의 상태를 읽습니다. 당신이 지금 숨을 어떻게 쉬는지, 근육은 경직되어 있는지,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지, 아니면 웅크려 있는지.


그리고 그 몸의 상태를 바탕으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받습니다:
“나는 막혀 있다” or “나는 흐르고 있다.” 여기서 잠재의식은 더 나아가지도, 새로운 것을 시도하지도 않고 지금의 진동을 그대로 반복 재생산합니다. ‘감정적 중력’이 작동하는 거죠.


걷기는 가장 원시적이면서 강력한 ‘흐름’의 신호입니다.

걷기는 인간이 처음으로 "생존을 넘어서 탐색하기 시작한" 신호입니다.
동물은 위기에서 도망치고, 위험할 땐 몸을 멈추지만, 걷는다는 건 “지금은 안전하다”는 생존 시스템의 확언입니다.


즉, 걷는다는 건 잠재의식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린 괜찮아.” “움직일 수 있고, 탐색할 수 있고, 삶은 흐를 수 있어.”

이 메시지는 신경계 전체를 안정시키고, 교감-부교감 시스템을 ‘복원 모드’로 재배열합니다.


뇌의 입장에서 ‘걷기’는 고급 패턴 재정렬 명령입니다.

하버드 메디컬스쿨에 따르면, 걷기와 같은 반복적이고 리듬감 있는 움직임은 알파파 → 세타파 상태를 유도해 창의성, 자기통합, 감정해소를 강화시킵니다.

좌우 교차 움직임은 대뇌 반구를 자동으로 동기화시키고, 심박수와 호흡 리듬이 정렬되면서 뇌는 마치 명상처럼 자기정렬 상태로 진입합니다.


즉, 걷기 하나로 뇌는 문제해결 상태, 잠재의식은 해독-재구성 상태, 감정 시스템은 순환 상태로 전환됩니다.


공식을 바꿔야 인생이 바뀝니다:


"느낌 → 행동 → 결과"가 아니라, "행동 → 느낌 → 에너지 → 현실”입니다.

사람들은 ‘좋은 기분이 들어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잠재의식의 작동 원리는 정확히 반대입니다.

몸을 움직여야, 에너지가 돌고 에너지가 돌아야, 기분이 바뀌고 기분이 바뀌어야, 새로운 선택이 가능해집니다.

이게 현실 창조의 근본 공식입니다.


걷는다는 건, 내가 어떤 상태에 있든 잠재의식에게 “에너지 순환 중입니다”라는 신호를 먼저 보내는 것.

그 신호가 감정의 얼음을 녹이고, 무기력의 정체를 흔들고, 의지 없이도 다시 살아갈 힘을 꺼내주는 작용을 합니다.


그래서 걷기는, ‘회복의 행위’가 아니라 ‘존재의 재정렬’입니다


걷는다는 건 단순히 운동이나 의무가 아닙니다. 존재의 무게중심을 다시 바닥으로 내리는 일입니다.

머리로 떠오르던 수많은 생각들이 발바닥을 통해 현실로 내려올 때, 우리는 비로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되찾게 됩니다.


잠재의식은 그 느낌을 감지하고, 그 상태를 기준으로 다시 삶을 설계하기 시작합니다.


걷기는 몸을 움직이는 행위가 아니라, 현실 창조 시스템 전체를 재부팅하는 ‘첫 작용’입니다.
이 작용 없이는 어떤 생각도, 어떤 전략도, 잠재의식에 도달하지 않습니다.





교감신경 & 부교감신경 — 걷기 = 자율신경을 정렬


인간의 신경계는 크게 두 가지 모드로 작동합니다.
바로 교감신경계(Sympathetic)와 부교감신경계(Parasympathetic)


교감신경은 우리가 생존 상태에 있을 때 활성화됩니다.
> 위협, 스트레스, 긴장, 경쟁, 불안
> 몸이 각성되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며 몸과 뇌는 “싸우거나 도망치라”고 외친다.
> 집중력은 올라가지만, 에너지 소비가 급격히 일어난다.


반면, 부교감신경은 회복, 치유, 창조의 상태입니다.
> 이완, 소화, 수면, 직관, 영감
> 우리가 깊은 휴식 속에서 회복될 수 있는 유일한 시스템


대부분의 현대인은 하루 종일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된 상태로 살아갑니다.
문제는 이 상태가 지속되면 잠이 안 오고, 소화가 안 되고, 호흡이 얕아지고, 의욕은 사라지면서도 생각은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생각을 고치고 싶다', '기분을 바꾸고 싶다' 해도 신경계가 ‘생존 모드’에 고착되어 있다면, 그건 단지 가속 페달을 밟은 채 핸들만 돌리는 것일 뿐입니다.

걷기는 부교감신경을 켜는 가장 단순하고 강력한 신호입니다.


햇볕은 맬라토닌과 세로토닌의 조절 장치입니다.

  • 맬라토닌 > 수면과 회복을 관장하는 부교감신경의 조력자
  • 세로토닌 > 마음의 안정과 충만감을 주는 행복 호르몬


햇볕을 받은 지 16시간 후, 뇌는 자연스럽게 멜라토닌을 분비해 수면을 유도합니다.
아침 햇살을 받으며 걷는 것 하나만으로도 당신의 수면 패턴은 다시 정렬되기 시작합니다.


또한 걷기의 ‘리듬’은 신경계의 흔들리는 진동을 안정화시킵니다.

일정한 속도, 반복되는 움직임, 고개를 들고 주변을 인식하는 행위는 뇌의 ‘운동 피질’과 ‘시상하부’, ‘시냅스 활동’을 안정화시키며 교감신경이 풀리고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됩니다.

이는 실제로 심박변이도(Heart Rate Variability)를 증가시키며 신체의 회복탄력성과 스트레스 복원력이 눈에 띄게 올라갑니다.


자연 속 걷기는 인간 생체시계를 '우주 시간'과 다시 맞추는 일입니다.

도심은 빛, 소음, 속도, 자극이 왜곡된 ‘인공 정보장’입니다. 이 안에서 우리는 점점 자연 리듬과 멀어집니다.

숲길, 햇볕, 바람, 조용한 길은 ‘자연의 진동수’와 당신의 생체 리듬을 동기화시켜 줍니다. 이때 신경계는 조율된 악기처럼 깔끔하게 울리기 시작합니다.


결론적으로 걷기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신경계 전체를 리셋하는 생물학적 명상입니다.

우리는 ‘생각이 많아서 힘든 것’ 같지만 사실은 몸이 멈춰 있어서 에너지가 고여 있는 상태입니다.

감정은 흐르지 않고, 신경계는 탈진했고, 마음은 멀리 가 있지만, 몸은 여전히 의자에 붙어 있습니다.


그때 해야 할 일은 하나.

“생각을 고치기 전에, 몸을 먼저 움직여라.”
“당신은 움직여야 풀린다.”


나가서 걸으세요.
자율신경이 정렬되고, 당신의 파동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Zone2 훈련법


걷기를 통해 ‘정신의 정지’를 경험했다면, 이제 Zone 2라는 다음 단계에 진입할 차례입니다.

Zone 2는 최대 심박수의 60~70%를 유지하는 저강도 지속성 유산소 훈련입니다.


쉽게 말해, "숨은 약간 차지만 대화는 가능한" 상태에서 30분 이상 꾸준히 운동하는 것입니다.
빠르게 걷기, 가볍게 조깅하기, 낮은 저항의 사이클링 등이 여기에 속합니다.


왜 Zone 2인가?  뇌과학과 에너지 관점에서의 해석해 봅시다.


Zone 2는 단순한 유산소 훈련이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 에너지 시스템 전체를 재정비하는 리듬 트레이닝입니다.


  • 에너지 시스템 리셋 

Zone 2는 ‘미토콘드리아’를 훈련시킵니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 내 에너지 공장으로, 이 훈련을 통해 지방을 에너지로 사용하는 능력이 향상됩니다.
쉽게 피로하지 않는 몸, 하루를 지속 가능하게 살아낼 수 있는 지속 에너지 시스템이 작동됩니다.


  • 감정과 생각의 안정화

심박이 안정된 Zone 2 훈련에서는 부교감신경이 점진적으로 우위를 점합니다.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이 줄고,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분비되며 생각은 차분해지고, 감정은 유연해집니다.
걷는 중 떠오르는 아이디어, 갑작스러운 인사이트. 모두 이 상태에서 생겨납니다.
이건 말 그대로, ‘움직이는 명상 상태’입니다.


  • 자기 리듬과의 재동기화

Zone 2는 타인의 리듬이 아닌, 나의 내면 리듬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뇌는 규칙적인 리듬(Stride Rhythm)에 반응합니다.
걸음과 호흡이 일정해질수록, 뇌파는 알파파와 세타파로 진입하고 이는 창조적이고 직관적인 뇌 상태를 만들어낸다.


  • 웨이트로 인한 활성 산소 배출

웨이트로 근육에 상처가 생기면 회복과정에서 체내에 활성 산소가 생성됩니다.

활성 산소는 체내에 염증을 유발하고 몸을 무겁게 하며 쉽게 피로하게 합니다.

따라서 유산소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Zone 2, 이렇게 실천해보세요:

  • 시간: 최소 30분 이상
  • 호흡: 약간 숨이 차지만, 대화가 가능한 수준
  • 빈도: 주 2회 이상
  • 장소: 자연광을 받을 수 있는 바깥, 혹은 통풍이 잘 되는 공간
  • 포인트: ‘버티는 게 목적’이 아니라, ‘유지하는 게 목적’이다


다음 칼럼에서는  이 흐름 위에 밀도와 집중력을 더해줄 웨이트 트레이닝을 다뤄보겠습니다.
Zone 2가 에너지를 흐르게 했다면, 웨이트는 그 에너지를 형태로 구현하는 훈련입니다.





가장 깊은 깨달음은 걸으면서 찾아온다


많은 사람들이 깨달음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유튜브를 보고, 심지어 명상에 도전하지만 진짜 중요한 건 언제나 ‘움직이는 순간’에 찾아옵니다.

‘앉아 있는 생각’은 때로 머리를 더 복잡하게 만들고, ‘움직이는 침묵’은 오히려 마음을 조용히 정리해줍니다.


걷는다는 건 단순한 운동이 아닙니다.
그건 ‘흐름을 회복하는 의식적 선언’입니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멈춘 삶에, 다시 에너지를 흘려넣는 행위입니다.


명상은 앉아서 하기도 하지만, 걷기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명상입니다.
가장 뛰어난 사상가들과 예술가들이 걷기 속에서 통찰을 얻었듯, 당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머무르지 말고 흐르세요.

지금 당장 나가서 걸으세요.
당신의 삶이 다시 흐르기 시작할 거예요.


-젠틀맨

관리자
2025-05-28

“제 인생에서 가장 큰 성장은 가장 고통스러운 시기에 일어났습니다.” 

-일론 머스크


머스크의 말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닙니다. 실제로 저를 포함해서 많은 사람들은 '깨어남'이나 '진동 상승'이라는 말을 듣고 그게 평화롭고 고요한 축복의 여정일 거라고 기대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의식이 깨어날수록, 마음은 더 요동치고, 삶은 마치 무너지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끌어당김, 트랜서핑, 영성, 양자역학, 정신분석학, 뇌과학을 공부하고, 명상과 비전 보드를 반복하고, 긍정적 파동을 유지하려 애쓰는데도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무기력해지고, 고통스러워집니다.

그때 사람들은 묻습니다:

“나는 왜 이렇게 불안하지?”
“도대체 뭐가 ‘진짜 나’인 거야?”
“정말로 깨어나고 있는 걸까, 아니면 무너지고 있는 걸까?”


이번 칼럼은 바로 이 질문들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 고통은 ‘잘못된 방향’의 신호가 아니라, 바로 '통과 중'이라는 증거라고.


영혼은 진동이 확장될수록 그동안 에고가 쌓아온 모든 구조를 부숴야 합니다.
그 해체의 고통 없이는 새로운 차원으로 넘어갈 수 없습니다.

성장 전의 고통은 선택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그리고 그 구조를 이해할 수 있다면, 우리는 마침내 그 고통을 두려움이 아닌 이행의 진동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보는 성장통 (라캉의 세계 — 실재계, 상상계, 상징계)


많은 사람들이 “나답게 살고 싶다”, “본질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정작 ‘지금 내가 누구인지’조차, 아주 오랜 시간 착각 속에 있었을 수 있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이를 정신분석학 관점으로 라캉이 아주 쉽게 설명해줍니다. 라캉의 정신분석학은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세 개의 층으로 나눕니다.
우리는 이 셋의 균열을 통과하며 자아를 해체당하고, 다시 구성하며, 그 과정을 통해 ‘성장통’을 겪습니다.


상징계 (Symbolic Order)

→ 국가, 기관, 문화, 사회적 규칙, 언어, 도덕, 질서, 이름, 의미가 작동하는 세계입니다. 에고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좋은 사람”, “성공한 사람”, “효자”, “CEO” 같은 타이틀들이 모두 이 ‘상징계’에 속한 자아의 껍데기들입니다.
→ 여기서의 나는 ‘말로 설명 가능한 나’입니다.


어릴 적부터 우리는 “좋은 아이가 되어야 한다”, “이런 모습이 바람직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신이 어떤 사람이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는지 배웁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그 기준을 내 기준인 줄 알고 살게 됩니다.



상상계 (Imaginary Order)

→ 거울 속의 나, SNS 속의 나, 타인의 시선 속에 존재하는 '이상적인 나'입니다.
→ 이 세계에서 나는 늘 “내가 생각하는 나”에 맞춰 살아갑니다.

“나는 이런 사람이어야 해.”
“나는 이런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이렇게 보여야 해.”


문제는, 이 ‘상상된 나’는 실제로 내가 누구인지와는 거의 무관한 이미지의 집합이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성공해도, 예뻐져도, 인정받아도 어딘가 계속 공허하고, 불안합니다.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내가 나로 산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실재계 (Real Order)

→ 언어로 설명되지 않는 충격과 침묵의 세계입니다. 영혼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 여기엔 말이 없습니다.
→ 다만, 그 말 너머에서 삶 전체를 흔드는 ‘사건’만 있습니다.

  • 갑작스런 관계의 붕괴
  • 성공 이후에도 찾아오는 공허함
  • 통제되지 않는 감정, 공황
  • 명상 중에 찾아오는 정체성의 붕괴
  • “이건 내가 아니야”라는 말조차 설명할 수 없는 낯섦


이게 바로 실재계의 진입구입니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모든 것이 무너지는 동시에 ‘나’가 처음 태어나는 자리.
이것이 우리가 겪는 성장통의 본질입니다.



대상 a란 무엇인가?

라캉은 여기에 하나의 개념을 더합니다. 우리가 왜 그렇게 끊임없이 원하고, 추구하고, 증명하려고 애쓰는가?

그것은 모두 “대상 a (objet petit a)”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대상 a란? 내가 왜 원하는지도 모른 채, 평생 쫓게 되는 결핍된 대상입니다.
→ 더 많은 돈, 더 예쁜 연인, 더 완벽한 몸, 더 높이 올라가는 커리어…


하지만 우리는 그걸 정말 ‘원해서’ 쫓았던 걸까요?
사실은 대부분, “내가 부족하다는 전제”에서 출발한 욕망의 대체물이었습니다:


  • 어릴 적 사랑받지 못한 기억
  • 비교당하고 무시당했던 수치심
  • 나는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는 믿음


이런 말할 수 없는 결핍의 감정을 ‘대상 a’라는 가짜 목표로 바꿔서 “그걸 가지면 채워질 거야”라는 착각으로 살아온 겁니다.


자본주의는 이 구조를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이 라캉적 구조를 매우 정교하게 이용합니다.


  • 광고는 당신이 가진 결핍을 자극하고
  • SNS는 타인의 상상계 자아를 비교 대상으로 보여주며
  • 스스로를 ‘갖춰야 할 무언가’로 착각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욕망이 진짜 내 것이라고 착각한 채, 또다시 새로운 대상 a를 추적합니다.


성장통은 이 구조가 무너질 때 찾아옵니다.

어느 순간, 삶이 더 이상 ‘외부를 향한 추적’으로는 충족되지 않는 순간이 옵니다.


  • “이게 아닌데…”
  • “내가 왜 이걸 원하는지도 모르겠어.”
  • “가진 것도 많은데 왜 공허하지?”


이 순간이 바로, 실재계의 문이 열리는 신호입니다.

그리고 이 진입의 순간에, 우리는 모든 ‘원함’이 무너지는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영혼은 드디어 자기 자리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대상 a는 실체가 아니라 구조적 환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통해 고통받지만, 또 그것을 통해 깨어날 수 있습니다.


정리하자면:

  • 상징계: 타인의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좋은 사람’ > 에고
  • 상상계: 이미지 속 나, 보여지는 자아 > 에고가 생각하는 나
  • 실재계: 말로 설명되지 않는 충격, 영혼의 자리 > 영혼 & 나의 본질
  • 대상 a: 내가 평생 쫓던 “욕망”과 “두려움”의 환상 > 에고의 생명줄


성장 전의 고통은, 우리가 평생 '원한다고 믿었던 것들'이 사실은 환상이었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 환상이 무너지는 순간, 비로소 우리는 '진짜 나'와 다시 만날 수 있습니다.





시대의식 & 국과관 & 문화와 정신분석학의 연결 — 고통은 어디에서 오는가?


우리는 고통을 흔히 '개인적인 문제'로만 인식합니다. 하지만 라캉(정신분석학)과 바딤 젤란드(양자역학)의 관점에서 본다면, 고통은 결코 개인 안에서만 발생하는 게 아닙니다.
고통은 시대가 깔아놓은 에너지 판 위에서, 문화와 구조가 부여한 욕망을 따라가며 생기는 ‘에너지의 왜곡 반응’, 즉 증상입니다.


시대의식, 국가관, 문화는 어떻게 우리를 구성할까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부터 시대적 상징계와 상상계 속에서 존재하게 됩니다.

“이런 게 성공이야.” “남자는 이렇게 살아야지.” “정상적인 삶은 이런 거야.” “30살 전엔 자산이 얼마쯤 있어야지.” “몸은 이렇게 생겨야 사랑받아.”
이 모든 외부 질서는 사회적 상징계가 심어준 언어, 규범, 가치 기준입니다.


동시에, 인스타 속 누군가의 라이프스타일 브이로그의 감성 자취방 여행, 미식, 디지털 노마드, 퍼스널 브랜딩 이런 것들은 상상계가 부풀린 ‘이상적 자아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이 시대의식 & 국과관 & 문화(상징계 + 상상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우리는 상징계와 상상계 속의 흐름에 휘말릴 때, ‘증상’이 발생합니다. 즉 시대의식, 국가관, 문화에 따라 형성된 잠재의식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살아간다면 증상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증상은 단순히 "스트레스를 받아서" 생기는 게 아닙니다. 증상은 내가 왜 원하는지도 모른 채, 무언가를 쫓아온 결과입니다. 대부분의 인간은 6~8세 사이에 ‘실재계(영혼)중심 존재’에서 ‘상징계와 상상계(에고) 중심 존재’로 전환되기 시작합니다. 우리의 과거를 생각해보면 유년시절 온 세상이 아름답고 꽃과 강아지만 봐도 셀레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 상태가 실재계를 중심으로 존재하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나이가 들수록 학교에서 교육을 받을수록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이상적인 자아를 포장합니다. 그때 시작된 에고적 사고(상징계와 상상계적 사고)가 자신의 잠재력을 제한하는 뿌리입니다. 심리치료에서 하는 활동도 이 뿌리를 발견하고 흘려보내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를 ‘대상 a’를 향한 무의식적 추동이라고 부릅니다:


  • 돈을 벌고 싶다
  • 완벽한 몸을 만들고 싶다
  • 이상적인 연애를 하고 싶다
  •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싶다


이 모든 ‘원함’은 겉으로는 괜찮아 보이지만, 실은 어릴 적 결핍, 억눌린 감정, 주입된 기준을 따라 무의식이 “내가 부족하다”는 전제 위에서 만들어낸 갈망입니다.


그래서 현실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넌 이걸 정말 원해서 하고 있니? 아니면 결핍을 감추기 위해 달리고 있니?”

그 질문을 무시한 채 계속 대상 a를 추적하면 결국 삐걱거림, 감정폭발, 무기력, 거식증, 우울, 공황 같은 형태로 삶이 우리를 ‘고통’이라는 방식으로 멈춰세웁니다.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 ‘메시지’


우리는 지금 개인의 고통을 ‘치워야 할 장애물’로 보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불안하지?”,
“왜 아무 이유 없이 무기력할까?”,
“나는 왜 이렇게 반복해서 무너질까?”

이런 질문 앞에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고장 난 존재’라고 착각합니다.

하지만 정신분석학과 트랜서핑의 관점에서 보자면, 고통은 문제가 아니라 삶이 보내는 교정 신호입니다. 즉, "지금 너는 너의 본래 파동에서 어긋나 있어" 라는 진동의 피드백입니다.


그럼 왜 그런 어긋남이 생기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계가 상징계와 상상계(국가관 + 에고)로 짜인 거대한 구조물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상징계는 사회가 만든 국가관, 문화, 언어, 법, 가치, 윤리, 성과 지표입니다.
→ “이런 직업은 안정적이야”
→ “이런 인간관계가 바람직해”
→ “이 정도면 괜찮은 삶이지”


상상계는 미디어, SNS, 대중문화가 심어주는 이상적 자아상(에고)입니다.
→ 감성 자취방, 30대 억대 연봉, 외모·연애·라이프스타일
→ '그 사람처럼 살면 나도 괜찮아질 것 같아’


이 두 힘은 끊임없이 '나'를 기준 바깥으로 밀어냅니다.


그렇게 우리는 점점 '진짜 원하는 것'을 잊습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왜 원하는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쫓고 있게 됩니다.
정신분석학에서는 이걸 ‘대상 a’라고 부릅니다.

더 많은 돈 더 완벽한 몸 더 높은 성취 더 예쁜 연인.


이 모든 욕망은 대부분 내가 선택한 게 아닙니다.
그건 부족한 나를 메우기 위해 사회가 넣어준 가짜 갈망입니다. 그리고 그걸 쫓을수록 내 에너지는 왜곡되고, 삶은 더 불편해지고, 고통은 심화됩니다.


트랜서핑의 말처럼 고통은 실패가 아닙니다.
그것은 영혼이 아닌 선택에서 비롯된, 현실의 에너지적 마찰음입니다.


즉, 고통은 단순히 힘들어서 생기는 게 아니라 영혼의 파동과 어긋난 선택이 누적되었을 때 삶이 더는 흐를 수 없다는 것을 알려주는 신호입니다.


그래서 고통은 메시지입니다. 

  • 상징계에 맞추려다 생긴 내면 부조화
  • 상상계에 이끌리다 무너진 자존감
  • 진짜 원하는 것이 아닌 대상 a를 쫓은 삶의 왜곡


이 모든 것이 쌓여서 공황, 불면, 거식증, 무기력, 자괴감이라는 증상, ‘삶의 멈춤’으로 나타납니다다.

하지만 그것은 잘못된 게 아닙니다. 오히려 삶이 더는 외부가 설계한 기준으로는 나아갈 수 없다는 선언입니다.
본래 파동으로 돌아오라는, 영혼의 부드러운 경고음입니다.





해결책 : 나가서 걸으세요. 헬스장에 가세요. 명상하세요.


오래 살고 싶다면 나가서 걸으세요.

삶의 질을 높이고 싶다면 웨이트를 하세요.

최고의 삶을 원한다면 둘 다 하세요.


고통을 이기려 하지 마세요.
애쓰지 말고, 설득하려 하지 말고, 이유를 찾으려 하지 마세요.

몸을 먼저 움직이세요. 우리는 자주 생각을 바꿔야 현실이 바뀐다고 믿지만, 사실은 몸의 파동이 먼저 정렬될 때, 마음과 현실이 바뀝니다.


나가서 걸으세요. 

걷는 것은 단순한 이동이 아닙니다.
존재가 흐르는 가장 원초적인 리듬입니다.
생각이 멈추고, 에너지가 풀리며, 몸이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기 시작합니다.

→ 걷기 = 에너지 순환 = 정체된 감정 해소


헬스장에 가세요.

중력을 이기며 무게를 들어올리는 순간, 삶에 눌린 파동이 역전됩니다.
몸의 힘이 복원되면 무기력, 우울, 결핍감 같은 낮은 파동은 흘러나갑니다.

→ 근육 = 정체성 재건 = 에고 해체 이후의 중심 구축


명상하세요.

감정을 없애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을 허용할 수 있는 ‘공간’이 되세요.
명상은 감정을 조작하지 않고 흘려보내는 유일한 연습입니다.
명상 중 떠오르는 두려움, 슬픔, 메스꺼움은 떠나기 위해 마지막으로 찾아온 그림자들입니다.

→ 명상 = 감정 해방 = 영혼과 다시 연결되는 문


당신이 겪는 고통은 무너지고 있다는 신호가 아닙니다.
이전까지 살아왔던 모든 허상이 붕괴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 무너짐을 견뎌야 하는 게 아닙니다.

그 무너짐을 ‘흐르게’ 해주는 공간이 되면 됩니다.

그리고 그 가장 원초적이고 정확한 방법은 걷고, 들어올리고, 앉아 숨 쉬는 것.

몸을 움직이면 영혼이 따라옵니다.


Be yourself. Find freedom.


-젠틀맨

관리자
2025-05-17

"시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는 부자가 될 수 없습니다. 재정적 자유를 원한다면, 반드시 '지분'을 가져야 합니다. 어떤 사업이든, 그 일부를 소유하세요.”
— Naval Ravikant


대부분은 이 말을 단순한 ‘부자 되는 법’ 정도로 이해할 겁니다.
하지만 Naval의 이 한 마디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의 가장 은밀한 본질을 해부합니다.


그는 본질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시간을 팔아서 생존하는 시스템에 갇힌 존재들이라고. 존재의 본질을 잃고, 생존을 위해 자신을 ‘대여’하는 삶.

우리가 살아온 이 구조는 처음부터 질문이 없었습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잘 버틸 것인가?”가 먼저였고, “나는 누구인가?”보다는 “어떻게 보여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가 더 급했습니다.


어릴 적 우리는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고 배웠고, 대학에선 “스펙을 쌓아야 한다”고 배웠고, 졸업 후에는 “몸값을 올려야 한다”는 논리에 갇혀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부터 우리는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돈을 버는 것’이 되어버렸습니다.


이 구조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자본주의는 인간을 ‘노동력’으로 추상화한 시스템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한 사람의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입사 3년 차 마케터”, “팔로워 1만 명의 크리에이터”, “연봉 5천의 중간관리자”라는 숫자와 직함의 덩어리로 사회 속에 삽입됩니다.


모든 것이 계산되고, 모든 것이 성과로 전시되고, 모든 것이 비교 가능하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구조의 정점에 ‘돈’이라는 가치가 올라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무언가 거대한 것이 무너지고 있는 순간을 살고 있습니다.

  • 은행은 더 이상 신뢰를 주지 못합니다.
  • 국가 화폐는 끝없이 희석됩니다.
  • 중앙 시스템은 정보와 감정을 통제하지 못합니다.
  • 기술은 인간을 ‘도태’시키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 SNS는 비교 중독과 정체성 착각을 양산합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왜 이렇게 허무한가?”
“정말 이 구조가 전부인가?”

이제는 누구나 어렴풋이 느낍니다.

자본주의는 '정상'처럼 작동하는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있는 우리는 점점 망가져가고 있는 것을.


그래서 우리는 지금 무엇을 목격하고 있나요?


자본주의라는 시대 의식의 진동 끝에서, 그 거대한 구조가 흔들리고 있는 장면. 그 붕괴는 눈앞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이 국가 화폐보다 신뢰받고, 젊은 세대는 직장보다 창작을 택하며, 브랜드는 마케팅보다 정체성을 요구받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진짜 나다움을 살아가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이번 뉴스레터는 그 질문에서 출발한다.

  • 자본주의는 정말 끝나가고 있는가?
  • 우리가 알던 “돈의 시스템”은 무너지고 있는가?
  • 그 안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 그리고 더 깊은 질문,“그 붕괴는, 어쩌면 ‘존재로 돌아가기 위한 기회’는 아닐까?”

우리는 지금 자본주의의 ‘종말’이 아니라 존재 중심 패러다임의 ‘시작점’에 와 있습니다.

이제, 게임의 규칙은 바뀌었습니다.
살아남고 싶은가요? 그렇다면 더 빨리 움직이지 말고, 더 진실하게 진동이 생존 기술입니다.




시대의식 vs 영혼: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있다는 징후



자본주의의 가장 교묘한 함정: 외부 기준화된 삶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타인의 기준’에 맞춰 존재하도록 훈련돼 왔습니다.


“좋은 대학, 좋은 스펙, 좋은 몸, 좋은 사람”

모두 ‘좋다’는 말은 있지만, 누구에게 좋은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게 자본주의 시대의 가장 정교한 함정입니다.
삶 자체를 외부 기준으로 환산하도록 만든 것.


내가 진짜 원하는 걸 묻기 전에, 세상은 원하는 기준을 먼저 내면화했습니다.

내가 어떤 존재인지 자각하기 전에, “비교”와 “평가”가 나를 먼저 조형했습니다.


영혼은 고유성으로 존재하려 하고, 시대 의식은 비교로 삶을 질식시킵니다.


영혼은 단 하나의 목표만 가지고 있습니다:

“고유성으로 존재하기”


하지만 자본주의는 고유성을 환영하지 않습니다.

그건 관리 불가능하고, 예측 불가능하고, 생산성이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시스템은 우리를 끊임없이 비교하게 만듭니다:


  • 인스타그램을 켜도,
  • 트레이닝을 해도,
  • 독서를 해도,
  • 자기계발을 해도,


‘고유성’이 아니라 ‘좋아 보이기’ 위한 생존 전략이 되어버립니다.


성과, 소비, 자기계발마저 생존 전략으로 전락한 현실입니다.

지금 우리는 내면의 충동이 아니라, 외부의 생존 압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자기계발도 “놓이면 안 돼”라는 불안으로 시작됩니다.

소비도 “나도 이 정도는 써야 인정받지”라는 기준으로 흘러갑니다.

심지어 힐링조차 “힐링하고 있는 나”를 보여주는 연출된 이미지가 됩니다.


가장 심각하다고 느끼는 상황은 여행조차 연출로 변질됐다는 점입니다. 여행의 본질은 쉼이지 타이트한 관광이 아닙니다.


결국, 삶 전체가 비교에 중독되고, 존재는 점점 더 질식당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무너지고 있는 건, ‘돈’이 아니라 “자기다운 삶을 설계할 능력”입니다.


붕괴는 겉으로 보면 금융, 기술, 정치의 격변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인간 존재가 더 이상 이 프레임 안에서 숨 쉴 수 없다는 집단 의식의 거부 반응입니다.


이 시대의 선택지는 단 하나입니다:

“외부 기준으로 살아갈 것인가, 내 영혼의 진동으로 살아갈 것인가.”


비교, 증명, 과잉 퍼포먼스에 지쳐버린 이 시대에 당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혁명은 “존재 자체로 숨 쉬는 것”입니다.




정신분석학 라캉의 상징계 vs 실재계


“우리는 모든 것을 돈으로 측정하지만, 정작 돈 자체는 그저 ‘공유된 환각(shared hallucination)’에 불과하다.”

-NAVAL


라카의 실재계와 상징계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마그마와 화성암의 비유해 봅시다.

실재계(the Real)는 끓고 있는 마그마입니다.


아직 말로 설명되지 않고, 정체도 없고, 그저 존재하는 에너지 자체입니다. 영성으로 비유하면 영혼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상징계(the Symbolic)는 그 마그마가 식어 굳은 화성암입니다.
이름이 붙고, 제도가 되고, 법과 권력이 되어 사람들이 걸어 다닐 수 있는 ‘현실’이 된 것.

즉 현시대, 자본주의 시대, 시대 의식을 의미하며 영성으로 비유하면 에고와 비슷한 개념입니다.


라캉의 개념을 빌려서 자본주의를 설명하면 자본주의는 바로 그 굳은 화성암 위의 질서였습니다.

자본주의는 이름, 돈, 권위, 질서, 법, 그리고 그 틀에 순응하는 인간(에고)을 중심으로 작동했습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상징계 안에서 살았습니다.
“돈이 많으면 가치 있는 사람이다”
“직책이 높으면 더 중요한 사람이다”
“내가 어떤 이름을 가졌는가”가 존재의 전부였던 세계.


그런데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나요?


상징계(자본주의, 에고)가 금이 가고 있습니다. 규칙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권위는 신뢰를 잃고, 돈은 실체 없는 숫자에 불과하게 되고 있습니다.

이건 단순한 정치적 혼란이 아닙니다. 실재계(본질, 영혼)가 침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재계는 언어와 이름을 거부하는 에너지입니다. 즉 느낌으로만 소통하기 때문에 세상에는 공리로 남은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실재계는 말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거기엔 이름도, 권위도, 제도도 없습니다. 단지 존재의 ‘앎’만이 있습니다. 


실재계는 빅뱅 이전처럼 “이름 붙이기 전의 세계”고,
라캉은 이 세계가 트라우마처럼 등장한다고 말합니다.

지금 시대의 공허감, 불안, 우울, 조울, 탈진은 모두 실재계가 상징계를 뚫고 들어오고 있다는 징후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문턱에 서 있을까요?


  • 더 이상 ‘이름’으로 자신을 증명할 수 없고
  • 기존 제도는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며
  • 돈조차 존재의 무게를 대신해주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무의식 깊은 곳에서 존재 자체의 질문을 받기 시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내 이름을 제외하면 어떤 존재인가?”
“내가 가진 직업, 외모, 재산이 없을 때 나는 어떤 파동인가?”


실재계는 무섭지만, 동시에 자유입니다.

상징계가 무너지면 우리는 처음엔 혼란을 느낍니다.
하지만 그 혼란 속에는 “이름 이전의 나”, “존재 그 자체”가 깨어납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상징계에 더 오래 매달리는 것이 아니라, 실재계의 파동을 견디며 존재를 통과하는 힘입니다.

식은 마그마는 언젠가 무너집니다. 지금은 다시, 불타는 존재 위에 서야 할 때일 뿐입니다.




탈중앙화(암호화폐)


칼럼 주제에 맞게 대표적인 사례로 탈중앙화에 대해 이야기해봅시다. 암호화폐는 그 역할의 중심입니다.


“달러 > 비트코인”은 단순한 화폐의 대체가 아니라 신뢰의 구조 자체가 붕괴하고 재조립되는 문명 전환의 징후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은행, 국가, 중앙정부, 기업, 플랫폼, 전문가를 ‘신뢰할 수 있는 중간자(middleman)’로 삼고 살아왔습니다.

이것이 자본주의 시스템의 핵심 구조였습니다.


"가치의 이동"은 누군가가 보증하고 검열하며 인증할 때만 가능했습니다.

돈은 은행을 통해서만 이동했고, 사회적 신분은 직장이나 학위로 증명되었으며, 콘텐츠는 플랫폼이 소유했고, 사람들의 의견은 알고리즘이 걸러내고 배분했습니다.


이런 시스템은 중앙이 통제하고, 대중은 의존하는 구조를 유지하며 ‘권위’와 ‘질서’라는 이름으로 안정감을 제공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신뢰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습니다.

"$ → ₿"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의미합니다:


자본주의 (중앙화)

탈중앙화 (블록체인 기반)

신뢰 주체

국가, 은행, 회사

알고리즘, 코드, 분산 검증

가치 이동

은행 계좌, 법적 중개

개인 지갑, 스마트 컨트랙트

검열

가능 (계정 정지, 자산 동결)

불가능 (검열 저항 구조)

소유

플랫폼 소유

개인 소유 (Self-custody)

권력 흐름

위에서 아래로

모두에게 분산


이것이 왜 ‘자본주의 붕괴’일까요?

자본주의는 ‘중앙에 대한 신뢰’가 전제로 작동합니다.


그러나 지금 사람들은 묻기 시작합니다:

  • 왜 우리는 은행 없이 돈을 보내지 못하는가?
  • 왜 내 콘텐츠인데 플랫폼이 가져가는가?
  • 왜 한 정부의 정책이 내 자산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탈중앙화는 그 질문에 기술로 답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중앙이 보증해야 신뢰할 수 있다"가 아니라 "누구도 신뢰하지 않아도 시스템이 스스로 작동해야 한다"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습니다.


실제 변화의 예는 다음과 같습니다:

  • Bitcoin: 중앙 없이도 가치 저장과 이체가 가능한 최초의 통화
  • Ethereum: 스마트 계약으로 법 없이도 계약 실행 가능
  • DeFi (탈중앙금융): 은행 없이 대출, 예치, 이자 수익
  • NFT & Web3: 창작물 소유권을 플랫폼이 아닌 창작자에게 귀속
  • DAO: 위계 없이 구성원 투표로 결정하는 자율조직

(개인적으로 BTC와 ETH 외에는 장기적으로 모두 스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모든 흐름이 말해주는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경제는 더 이상 ‘명령’으로 운영되지 않는다.
신뢰는 더 이상 ‘권력’에서 나오지 않는다.
신뢰는 분산된 구조, 존재는 스스로 증명되는 파동에서 작동한다.”


비트코인은 단순한 돈이 아닙니다.
비트코인은 “신뢰”가 중앙에서 “존재”로 옮겨갔다는 문명사의 선언입니다.


이는 진정한 민주화의 시발점이며 대표적인 사례로 쿠팡이 있습니다.

쿠팡의 성공 키는 단순한 유통 기업이 아닌 누구나 판매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열어준 플랫폼입니다.


더 이상 물류 창고가 없어도 브랜드 파워가 없어도 개인도 ‘셀러’가 되어 고객에게 제품을 제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는 “유통 권력”의 민주화입니다.
판매 권한이 중앙에서 개인으로 분산된 것입니다.

이 구조는 Web2 기반이긴 해도, 이미 탈중앙화적 흐름의 전조였습니다.


쿠팡은 하나의 징후였습니다

우리가 보지 못했을 뿐, 이미 자본주의 시스템 내부에서도 중앙에서 개인으로의 권한 이전은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이 흐름은 더 이상 거스를 수 없으며 Web3는 그것을 완성시키는 기술 기반입니다.

비트코인은 자유를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은 이미 “자유롭게 존재하는 자들”이 사용하는 언어일 뿐입니다.




나 다움 = 생존 기술


나 자신을 상품화하세요:


나의 라이프스타일을 상품화한다

즉, 나의 다이어트 경험, 보디빌딩 경험, 부동산 경험, 암호화폐 경험, 데이트 경험, 비즈니스 경험 등. 모든 것이 상품이 될 것입니다.

교육은 교육 기관에서 개인의 경험으로 이전될 것이며 교육 주체의 민주화가 더 가속화됩니다.


나 자신을 아는 것은 가장 즐겁게 성공하는 방법입니다.


“존재의 진동이 분명한 자만이 살아남습니다.” 즉, 순수함만이 생존할 것입니다.


상징계 시대(에고, 자본주의, 현대 사회)의 ‘나’는 꾸며진 상품이었습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말해왔죠.

  • 더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 되라.
  • 더 잘 포장된 ‘자아’를 설계하라.
  • 외모, 스펙, 이력서, 말투, 팔로워 수까지 모든 것을 ‘팔릴 수 있도록’ 디자인하라.


그래서 우리는 나 자신을 외부 기준에 맞춰 편집하고, 포장하고, 최적화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소비자도, 창작자도 모두 “가짜”를 감지합니다.


실재계(영혼, 본질)가 침투한 지금, “진짜 나”가 아니면 시장도, 인간관계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구조는 이렇게 바뀌었습니다:

존재의 밀도, 삶의 파동, 말 뒤에 깔린 진정성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이 '무의식적으로 감지하는 정보가 되었습니다.


“나다움”은 이제 곧 생존 기술입니다.

과거에는 전문성을 포장해서 팔고 대중적인 걸 흉내내고 브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삶의 경험을 진동으로 전하며 사적인 걸 진정성 있게 말하고 존재로서 나타납니다.


사실 방식이 변한 건 아닙니다. 일류를 보면 항상 본질은 같았습니다.

더 이상 이류이하들의 방식이 대중들의 피로 누적으로 통하지 않을 뿐입니다.


당신의 모든 경험은 이제 정보가 아니라 자산이 됩니다.

경험 그 자체가 ‘화폐’가 되는 시대, 그 시작점이 바로 “나 다움”입니다.


교육의 중심도 이동하며 민주화가 가속화됩니다.


과거에 지식은 제도에 귀속되었습니다.
> 대학교, 학원, 전문가, 권위자


지금 지식은 경험을 통해 개인에게 축적됩니다.
> 나처럼 살아본 사람이 그것을 체화한 언어로 필요할 때 나누는 형태로 진화


즉, 교육 주체의 민주화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모든 삶이 커리큘럼이 되고, 그 사람의 진동이 강의 그 자체가 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더 나다워지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제 구독자라면 반복적으로 들었겠지만 정답은 정해져있습니다…. 걷기, 명상, 운동 ㅋㅋㅋㅋㅋ

이제는 스펙이 아니라, 파동 관리가 생존 경쟁력이 되는 시대입니다.


  • 걷기 → 정체된 감정의 흐름을 열어줍니다
  • 명상 → 중요성을 내려놓고 실재계(영혼)와 접속합니다
  • 운동 → 신체 파동을 진하게 하여 진동의 벽을 만듭니다


존재의 진동을 날카롭고 맑게 유지하는 기술이 곧 생존의 조건이자 창조의 에너지입니다.


지금은 가짜로 꾸민 사람은 점점 지워지고, 존재가 선명한 사람만 남습니다.

자본주의의 붕괴는 외부 기준의 붕괴이자, 진짜 나 자신으로 살 수밖에 없는 시대의 개막입니다.


Be yourself. Find freedom.


-젠틀맨

관리자
2025-05-12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이 아닐 가능성은 0.000000001%입니다.

= 이 세상이 시뮬레이션일 가능성은 99.999999999%입니다.”

Elon Musk


이 말이 단순한 농담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이 질문은 철학과 물리학, 그리고 존재론의 중심으로 우리를 이끕니다.


기술은 현실을 흉내 내고, 현실은 기술을 통해 시뮬레이션된다.


인류는 계속해서 더 정교한 가상현실을 만들어왔습니다. 게임, 메타버스, AI, 디지털 트윈 시스템...
이 기술들이 현실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의 정밀도를 갖게 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만약 언젠가 현실과 완전히 구분 불가능한 시뮬레이션 세계를 만들 수 있다면, 혹은 이미 만들었다면 그 안에서 ‘살고 있는 존재들’은 자신이 시뮬레이션에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 없겠죠.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우리 역시 이미 그런 시뮬레이션 안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건 단순한 가정이 아닙니다. 수학적으로 시뮬레이션 안에 있을 확률은 99.999999999%입니다.
우리가 현실을 사는 유일한 존재일 확률은 고작 0.000000001%에 불과합니다.


그럼 우리는 NPC인가, 아니면 ‘플레이어’인가?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떠오릅니다.


만약 이 삶이 정말 정교한 시뮬레이션이라면, 우리는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가는 코드화된 존재일까요?

아니면, 의식을 가진 플레이어로서 자유의지와 파동을 통해 시뮬레이션을 재작성할 수 있는 존재일까요?


이 뉴스레터에서는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현대 물리학(이중슬릿 실험, 뉴턴 제3법칙)을 바탕으로 현실이 시뮬레이션일 수밖에 없는 이유, 그리고 그 시뮬레이션 안에서 어떻게 '게임의 규칙'을 초월할 수 있는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이제, ‘플레이어의 시점’으로 현실을 다시 바라볼 시간입니다.

시작해봅시다.




시대 의식, 교육, 문화, 국가관


“인간을 제어하는 장치는 매우 쉽습니다.

뇌 속에 ‘두려움’이라는 감정만 유발시키도록 교육하면 됩니다.”


현실은 태어나기 전부터 짜인 각본이라는 사실은 50%는 진실이지만 50%는 거짓입니다.


우리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이름이 붙고, ‘남자다, 여자다’, ‘이건 옳다, 저건 틀리다’는 규칙이 주어집니다다.


그 누구도 왜 그런지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그저 이 프로그램을 받아들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태어난 직후부터 이미 시스템 속에 있습니다.


‘국가’, ‘교육’, ‘성공’, ‘윤리’라는 이름의 초기 코딩을 거부감 없이 다운로드받습니다.


목적없는 교육은 학습이 아니라, ‘현실의 주입’의 일부입니다.


학교는 지식을 가르치는 공간이 아닙니다다. 그보다 더 강력하게, 현실이 무엇인지를 정의하는 공장입니다.


현대 학교의 기원은 ‘공장’에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오늘날의 학교 시스템은 지식 탐구를 위해 설계된 게 아닙니다.

산업혁명기의 필요에서 탄생한 구조의 일부입니다. 그때 세상은 대규모 공장과 조직화된 기업의 시대에 들어섰고, 국가는 효율적인 노동자를 대량으로 길러낼 시스템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지금의 학교입니다:

  •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 종소리에 맞춰 움직이며,
  • 줄을 서고, 앉고, 지시에 따르는 습관을 배우며,
  • 지시받은 지식만 기억하고, 외워내고, 복종하는 법을 익힙니다

이 모든 구조는 공장의 리듬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학교는 지성을 기르는 곳이 아니라, 순응하는 인간을 기르는 컨베이어벨트였습니다.


그래서 교육은 ‘정신적 계급’을 만듭니다

  • 시험 점수는 가치의 등급을 매깁니다
  • 교사는 ‘권위’, 학생은 ‘복종’을 학습합니다.
  • “정답은 하나다”는 신념은 스스로 사고하는 뇌를 폐기하고, 정해진 답에 적응하는 뇌로 재설계합니다.


이렇게 형성된 학교적 사고방식은 성인이 된 후에도 계속됩니다.


  • "틀리면 안 된다"
  • "리더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 "정해진 길을 벗어나면 실패한다"


이 신념들이 사람을 평생 작은 틀 속에 가둡니다.


이처럼 산업혁명은 인간의 몸만이 아니라 사고방식까지 산업화했고, 학교는 그 핵심 수단이었습니다.
시스템이 원하는 건 깨어 있는 인간이 아니라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부품입니다.


두려움이 들어오는 순간, 자유는 퇴장합니다


“실패하면 버려질 것이다.”
“떨어지면 낙오될 것이다.”
“틀리면 사랑받지 못할 것이다.”


이런 두려움이 반복될수록 인간은 자발적으로 복종합니다.
자유의지가 사라지는 게 아니라, 두려움 앞에서 스스로 포기하도록 훈련됩니다.


따라서 ‘생각된 현실’은 너무 오랫동안 반복됩니다.

이제는 진실처럼 느껴집니다.


"이 나이에 결혼해야 한다",
"이 정도 돈은 벌어야 한다",
"그건 정상이고, 저건 이상하다"...


사람들은 이 생각들이 자기 생각이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그건 오랜 시간 교육받은 “누군가의 기준’일 뿐.


우리는 언제부터 타인의 생각을 살아가기 시작했나요?


국가, 문화, 종교: 가장 집요한 시뮬레이션 코드입니다.


국가란 무엇인가?
‘민족’, ‘국경’, ‘역사’, “종교”는 관념의 집합일 뿐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관념을 위해 기꺼이 서로를 혐오하고, 죽이고, 자기를 파괴합니다.

문화는 인간을 하나로 묶기도 하지만 동시에 ‘너와 나’를 나누는 무기가 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건 진짜 실체가 아니라, ‘공통된 믿음’의 집단 시뮬레이션입니다.


따라서 깨어남은, 이런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나는 누구인가?”
“이 기준은 누가 만든 것인가?”
“나는 왜, 그것이 진짜라고 믿었는가?”


이 질문이 처음 등장하는 순간,
코드의 바깥에서 나를 보기 시작하는 시야가 열립니다.


그때 비로소 삶은 감옥이 아니라 플레이필드가 됩니다.




간절하면 망하는 이유 : 중요성 (작용 반작용)


뉴턴 제 3법칙:

“모든 작용에는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있다.”


물리학의 이 단순한 원칙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에서도 아주 정밀하게 작동합니다.
특히 ‘원하는 것을 이뤄내는 힘’, 즉 현실 창조의 역학 안에서도 이 원리는 예외 없이 적용합니다.


당신이 너무 간절한 이유, 그래서 계속 멀어지는 이유는 단순합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이렇게 배웠습니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
“원하는 만큼 행동하라.”
“노력하면 다 된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진짜 간절했던 순간, 오히려 실패하고, 정말 이뤄야만 했던 목표, 어긋났던 기억이 많다는 걸.


왜 그럴까요?


그건 당신이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에너지 시스템의 균형’을 무너뜨렸기 때문입니다.


현실은 우주 만물은 균형을 유지하려 합니다. 당신이 어떤 목표에 “간절하게 매달리는 순간”, 그 간절함은 시스템 안에서 과도한 작용으로 작동합니다.


그러면 우주는 그 과잉된 에너지에 대해 같은 크기이지만 반대 방향의 반작용을 발생시킵니다.

당신이 “반드시 이뤄야 해”라고 말하는 순간, 현실은 “그건 아직 너의 것이 아니다”라는 현실로 나타납니다.

왜냐하면 이 시스템은 ‘균형’을 유지하는 걸 가장 우선시하니까.


저를 구독하시는 분들이라면 리얼리티 트랜서핑을 한 번쯤은 접하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제 경험적으로 해석한 리얼리티 트랜서핑이 말하는 “중요성”이란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필요 이상으로 무게를 실어주는 것일 뿐입니다.


  • “저 사람에게 인정받아야 해.”
  • “이번엔 절대 실패하면 안 돼.”
  • “이게 안 되면 나는 무너질 거야.”


이런 말들이 입 밖으로 나올 땐 이미 늦었습니다.
당신은 지금 현실을 다루는 게 아니라, 자신이 만든 ‘왜곡된 에너지의 중력장’ 안에서 스스로 갇히고 있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그 에너지는 무의식적으로 결핍의 진동을 계속 뿜어내고 절대 이 상태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현실을 창조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현실은 그 파동을 읽고, 그 결핍 그대로를 반영합니다.

그래서 간절함은 현실을 지연시키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이해하기 힘들다면 당장 주먹으로 벽을 쳐보세요.


단번에 체험적으로 이해됩니다.


진짜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다면, 그건 힘으로 당기는 것이 아니라, 흘러오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당기면 저항이 생기고, 원하면 멀어지고, 집착하면 반드시 깨집니다.


“중요성은 시스템을 왜곡시키고, 그 왜곡은 반드시 반작용을 발생시킵니다.”


현실은 언제나 균형을 맞추려는 쪽에 더 큰 힘을 싣습니다.
즉, 당신이 ‘너무 간절한 쪽’에 있을수록, 현실은 그 반대편으로 기울게 됩니다.


균형을 회복하려면 — 중요성을 해체하세요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싶다면, 그것을 ‘갖고 싶은 대상’이 아니라 이미 나의 일부인 것처럼 다뤄야만 합니다.

  • "이루어도 좋고, 안 이뤄져도 괜찮다."
  • "이미 나의 현실이고, 나는 그 진동 속에 있다."
  • "간절함 대신, 선택된 존재로 산다."

이런 에너지 상태가 되었을 때,
우주는 더 이상 반작용을 보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땐 이미 시뮬레이션과 진동이 ‘일치’했기 때문입니다.


정리하면:

  • 간절함 = 에너지의 과도한 작용
  • 우주 = 그에 대응하는 반작용(저항)을 반드시 발생
  • 진동 = 존재의 안정성이 먼저, 현실은 그 반사
  • 현실 창조 = 결핍으로부터가 아니라, 균형에서 시작됨




힘을 빼세요 간절하면  망합니다

> 중요성 낮추고 관측하기 (이중슬릿 실험)


우리가 어떤 대상에 대해 두려움을 느낄 때, 그 본질은 사실 “그걸 너무 중요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돈이 없을 때 사람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자본주의는 ‘돈’이라는 개념에 생존, 안전, 정체성 같은 걸 모두 얹어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이 돈과 관련된 방식으로 흐르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죽을 것처럼 느껴집니다.


이 상태에선 진동이 매우 불안정하게 요동칩니다.
그리고 그 불균형은 현실에 왜곡된 반작용으로 나타납니다.


양자역학의 유명한 이중슬릿 실험이 말해주는 것은 단순합니다.


양자역학의 대표적인 이중슬릿 실험에서는 관측자가 없는 상태에서는 입자가 ‘파동’으로 행동하고 관측자가 개입하는 순간, 파동은 ‘입자’로 붕괴됩니다.


즉, 관측자의 의식이 현실의 형태를 결정짓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어떤 대상을 ‘너무 간절하게, 너무 중요하게’ 바라보는 순간 그 관측은 이미 왜곡된 에너지를 가진 상태가 됩니다.


그 에너지는 결핍, 불안, 통제 욕구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동은 파동을 수많은 가능성 중 하나로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한 현실”이라는 고정된 입자 상태가 됩니다.


그러므로 관측을 정렬해야 합니다. 관측의 진동을 바꾸는 방법은 딱 하나: 중요성을 낮추는 것.


우리가 두려움이나 불안을 느낄수록 그 감정은 “이건 반드시 돼야 해”라는 에너지에서 나옵니다.
그 에너지를 해체하는 가장 직접적이고 안전한 방식이 명상입니다.


명상은 어떤 대상을 해결하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훈련입니다.
즉, “나에게 절대적으로 중요한 문제”를 그냥 하나의 감정 파동, 하나의 생각 패턴으로 관측할 수 있는 상태로 바꿉니다.


그 순간 중요성은 해체되고,
관측의 진동이 중립화되며,
다시 현실은 파동 상태,

즉 무한한 가능성의 영역으로 돌아갑니다.


존재로서 진동한다는 것은 “나의 힘으로 현실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존재하는 가능성이 나를 통해 실현되도록 허용하는 것”입니다.

다르게 말하면, 내가 만드는 게 아니라, 이미 만들어진 구조에 내가 진동으로 연결되는 것.


그래서 존재로서 진동은 반드시 ‘중요성이 없는 상태’에서만 작동합니다.


왜냐하면 중요성이 생기는 순간, 의식은 다시 “내가 해야 해” “될까 말까” “조급하다”라는 진동상태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론 – 작용을 멈추고, 파동을 유지하라


원하는 현실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 현실의 진동 속에 이미 있는 사람처럼 관측하라.

중요한 것은 행동이 아니다.
결과를 조절하려는 시도도 아니다.

중요성을 낮춘 관측, 그 자체가 현실을 붕괴시키는 파동의 진입점이다.




행위로 느낌을 유발하세요 (걷기, 명상, 운동) (내부 의도)


현실을 바꾸기 위해 애쓰는 대신,
감정을 흘려보내는 몸의 루틴을 먼저 정렬하세요.


많은 사람들은 “기분이 나아져야 움직일 수 있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반대입니다.


움직일 때, 비로소 감정이 정화되기 시작합니다.
느낌은 행동 이후에 따라오는 반응이기 때문입니다.


걷기 — 에너지 정체를 풀어내는 가장 간단한 루틴


조급함, 무기력, 불안 같은 감정은 머릿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몸속에 정체된 에너지 덩어리처럼 존재합니다.

산책은 그 덩어리를 녹이는 움직임입니다.


  • 땅을 밟고,
  • 리듬 있게 걷고,
  • 어깨에 힘을 빼고,
  • 눈으로 세상을 관찰하면


단 10분 만에도 머릿속 긴장이 흐릿해지고, 감정이 다르게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명상 — 감정을 싸우지 않고 지나가게 하는 공간


우리가 고통을 느낄 때, 사실은 고통 때문이 아니라 고통을 없애려는 시도 때문에 더 힘든 경우가 많습니다.

명상은 그 시도를 멈추고, 그저 감정을 ‘통과하게 허용’하는 자리입니다.


  • 숨이 가빠진다 → “지금 두려움이 올라오는구나.”
  • 가슴이 무겁다 → “이 감정을 억누르지 않겠다.”
  • 머릿속이 복잡하다 → “나는 지금 판단하지 않고 그냥 여기에 머물겠다.”


이 관찰의 순간이 쌓일수록, 감정은 내가 끌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앞을 지나가는 ‘파동’처럼 인식되기 시작합니다.


운동 — 진동을 바꾸는 가장 즉각적인 방식


감정은 물질적인 자극에 영향을 받습니다.
무게를 들어 올리고, 심박수를 높이는 행위는 곧바로 “나는 살아있다”는 신체적 신호를 뇌에 보냅니다.


그 순간, 두려움 회로는 억지로 끊는 게 아니라 자연스럽게 약해집니다.

운동은 감정을 없애려는 게 아니라 존재의 기준 진동을 위로 끌어올리는 실전 도구입니다.


  • 딱 20분, 전신을 써서 땀을 내는 것
  • 그 안에서 “나는 변화하고 있다”는 감각을 경험하는 것


이것만으로도 하루 전체의 에너지는 달라집니다.


결론 — 감정은 파동이고, 파동은 몸으로 움직입니다

당신이 하는 걷기, 조용히 머무는 명상, 짧게라도 움직이는 운동이 곧 당신의 현실 설정값을 바꾸는 진입점입니다.


우리는 두려움을 없애는 게 아닙니다.

그 위에서 중심을 유지하는 연습을 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작고 반복 가능한 루틴들이, 현실을 설계하려는 ‘의지’를 내려놓고 존재로서 자기 진동을 세팅하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현실은, 그 진동을 읽고 나서야 반응합니다.




현실은 ‘바꾸는 것’이 아니라 ‘반응하는 것’이다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너무 많은 애를 써왔습니다.

더 열심히, 더 많이, 더 빨리.

하지만 그런 방식으로는 진짜 원하는 현실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걸, 이제는 알고 있습니다.

현실은 조작의 대상이 아닙니다. 당신의 진동에 반응하는 정밀한 거울일 뿐입니다.


이제는 방법을 바꿔야 합니다.


밖을 조작하는 대신, 내 안을 정렬하고 존재를 세팅하는 것.


그 정렬의 시작이 걷기고, 명상이고, 운동입니다.

그 단순한 행위들 안에서 우리는 두려움을 흘려보내고, 중요성을 낮추고, 존재의 기준을 ‘이미 이루어진 상태’로 바꾸는 훈련을 하게 됩니다.

현실은, 그 훈련이 자연스러워졌을 때 아무 저항 없이 스스로 재구성되기 시작합니다.


조작하지 마세요.
존재하세요.
그게 이 시뮬레이션의 진짜 해법입니다.


-젠틀맨

관리자
2025-05-10

일하기 위해 스스로 애써야 한다면 

잘못된 방식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행동을 원인으로 결과를 성취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많이 움직이고, 더 많이 애쓰고, 더 많이 버텨야 더 큰 성과가 따라올 거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우리는 “성공하려면 노력해야 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믿음대로 산 결과, 정작 원하는 삶에 도달한 사람은 얼마나 될까요?

어쩌면 행동 자체가 원인이 아니라, 어떤 ‘상태’에서 비롯된 파동의 결과물은 아닐까요?


진짜 창조는, 존재의 진동이 먼저이고, 행동은 그 파동에 따라 저절로 유도되는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뉴턴 제3법칙: 

"모든 작용에는 그에 상응하는 반작용이 있다."


우리는 흔히 이 법칙을 물리적인 현상에만 적용한다고 생각하지만, 감정, 사고, 행동의 세계에서도 이 원리는 똑같이 작동합니다.


당신이 억지로 행동하려는 순간, 에너지가 자연스럽지 않다면 무의식은 저항(반작용)을 발생시킵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면:


  • 의지로 애써도 계속 지칩니다.
  • 꾸준히 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자책하게 됩니다.
  • 성과가 없으면 자기 정체성을 부정하게 됩니다.


결국 행동하려는 작용이 "나는 지금 부족하다"는 무의식의 반작용을 끌어내는 거예요.


그럼 진짜 작용은 뭘까요?


바로 존재의 진동입니다.


  • 이미 된 존재처럼 느끼는 상태
  • 내가 원하는 결과를 이룬 파동으로 숨 쉬고 걷는 상태
  •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에너지 상태


이 상태가 자연스러운 작용이 되면, 그에 따라 행동은 반작용으로 저절로 발생합니다.
지치지 않고, 끌리지 않아도, 어느새 집중하고, 나아가고, 움직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결국 이렇게 정리할 수 있어요:


"의지로 하는 행동은 작용이고, 존재로 진동할 때 나오는 행동은 반작용이다."

애쓰는 사람은 결국 반작용에 막히고, 존재하는 사람은 자연스럽게 행동하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잠재의식을 통해 행동을 유발하는 5단계를 하나씩 알아봅시다.




잠재의식이 ‘행동’을 유발하는 5단계


오늘 뉴스레터에서 다루는 내용은 기존 상식과 정면으로 부딪힙니다.


당연하다고 믿어온 “행동 → 결과”라는 공식이 사실은 거꾸로 작동하고 있다는 걸 아는 순간, 여러분은 지금까지 왜 그토록 지치고, 번아웃이 반복되었는지 이해하게 될 겁니다.

이 방식은 익숙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멈춰도 괜찮은 걸까?’라는 두려움이 올라올 수도 있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기존의 행동 방식이 정말 당신을 원하는 현실로 이끌었나요?
아직도 같은 문제 앞에서 똑같이 무너지고 있다면, 지금 이 순간이 다른 방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 기회입니다.


실험처럼 해보세요. 손해볼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조급해지는 자신을 마주할 뿐입니다. 그러나 그 조급함을 관통한 자에게는 잠재의식이 현실을 움직이는 진짜 작동 원리가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1단계. 목표 설정 (의식의 선택)


우리는 현실을 바꾸기 전에 먼저 “어떤 존재로 살고 싶은가”를 선택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목표 설정이 아니라, 의식이 머물고자 하는 파동의 방향을 정하는 것입니다.


네비게이션도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한 목적지가 없다면 끊임없이 방황만 하다 끝이 납니다. 

인생도 마찬가지 입니다. 기존 방식은 “행동 → 결과 → 정체성” 순서입니다.


하지만 잠재의식의 작동 원리는 정반대입니다.
“정체성(존재) 선택 → 진동 → 행동 → 결과” 이 순서로 현실은 움직입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겁니다:

“나는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고 싶은가?”
“그 존재는 어떤 감정을 자주 느끼며 살아가는가?”


예를 들어,

  • 나는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여유로운 사람이다.
  • 나는 창의적으로 살아가며 타인을 돕는 사람이다.
  • 나는 사랑받고 자유로운 관계를 누리는 사람이다.


이처럼 존재의 방향이 명확해질수록 그 존재가 자연스럽게 유지하는
감정, 습관, 진동이 동기 없이도 따라오게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지금 이 순간, 이미 존재할 수 있는 감정의 조각을 찾는 것’입니다.

  • 여유로운 사람이라면 지금 커피 한 잔의 여유도 누릴 줄 압니다.
  • 건강한 사람이라면 오늘 산책 한 번으로도 회복의 감각을 찾습니다.
  • 사랑받는 사람이라면 지금 나 자신에게 따뜻한 말을 건넬 수 있습니다.


목표는 ‘미래’가 아니라, 존재로서 ‘지금’ 선택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결과의 시작점이며, 올바른 방향으로 작용을 유발하는 방식입니다.


행동 이전에 에너지를 정렬하는 1단계, ‘존재의 선택’입니다.




2단계. 행동 후 실패 — 잠재의식이 ‘길’을 인식하는 순간



시작이 절반이라 불리는 이유, 뇌는 이미 반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존재의 방향을 선택한 뒤, 자연스럽게 그 방향에 맞는 행동을 시도하게 됩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이 지점에서 좌절합니다.


“왜 선택까지 했는데, 결과가 바로 오지 않을까?”
“역시 안 되는 거야. 내 길이 아닌가 봐.”


아니요. 오히려 지금부터가 시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잠재의식은 “현재만을 인식한다”라는 특성을 모르기 때문에 일시적인 실패에 대해서 좌절하고 스스로 인생 게임에서 셀프 퇴장을 선택합니다.


우리는 ‘행동을 통해 결과를 얻는다’고 배웠지만, 잠재의식은 행동을 통해 ‘이 방향으로 가는구나’라고 인식합니다.

즉, 성공이 아닌 ‘행동’ 자체가 잠재의식에 방향성을 심어주는 신호입니다.


예를 들어,

  • 트레이딩을 하기로 선택하고, 공부하고 시도했는데 손실을 봤다.
  • 작가가 되기로 선택하고 글을 썼는데, 반응이 없다.
  • 건강해지기로 선택하고 운동했는데, 몸이 더 피곤하다.


이 모든 상황은 겉으로 보면 실패지만, 잠재의식에게는 “내가 진짜 이 방향으로 가기로 선택했구나”라는 각인이 시작된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진짜 중요한 건 이것입니다:

행동 이후에 반드시 올라오는 두려움과 욕망.

  • “빨리 잘되고 싶다.”
  • “혹시 안 될까 봐 무섭다.”
  • “이 정도로는 부족한 것 같다.”


이 감정들이 바로 잠재의식의 ‘잔재 에너지’, 과거의 결핍된 파동이 아직도 내부에서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때 바로 명상을 통한 정화가 필요해집니다.


잠재의식은 이미 방향을 인식했으니, 이제는 감정을 비우고 파동을 정화해야 할 시점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목표 설정이 끝나고 행동 후 실패는 단순한 실패의 구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잠재의식이 현실 창조의 기초 공사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입니다.
무너지지 마세요. 이건 ‘길이 열린다는 신호’입니다.


Zoccola, P.M. and Dickerson, S.S., 2012. Assessing the relationship between rumination and cortisol: A meta-analysis. Health Psychology, 31(5), pp.640–649. Available at: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3864849/ [Accessed 6 May 2025].

Cleveland Clinic, 2022. Atychiphobia: Fear of Failure. [online] Cleveland Clinic. Available at: https://my.clevelandclinic.org/health/diseases/22555-atychiphobia-fear-of-failure [Accessed 6 May 2025].



3단계. 명상으로 두려움과 욕망 해체 (에너지 정화)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억눌린 감정은 당신의 인생을 망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두려움과 욕망을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감정을 있는 그대로 느끼지 않고 억누르거나 회피합니다. 그리고 그 감정은 처리되지 않은 채 잠재의식에 깊이 눌려 정체됩니다.


이것은 매우 위험한 습관입니다. 왜냐하면 억눌린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삶의 중요한 순간마다 우리의 선택과 반응을 조종하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행동 이후 실패가 반복되는 이유도 이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행동하고,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으면 어김없이 아래의 감정이 올라옵니다:

  • “혹시 못 이룰까 봐 두렵다.”
  • “빨리 갖고 싶다.”


이 감정은 본질적으로 모두 ‘결핍의 파동’입니다.


즉, 지금 나는 이미 가진 사람이 아니라, 아직 부족한 사람이라는 진동을 작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파동은 현실에서 결핍의 경험만을 반복적으로 반작용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행동해도 원하는 결과가 오지 않고, 계속 같은 좌절을 반복하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필요한 것이 명상을 통한 에너지 정화입니다.


명상은 감정을 억누르지 않고, 그 두려움과 욕망을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온몸으로 느껴주기 위한 공간입니다.


Standford Medicine에 따르면, 감정은 심장 건강, 자율신경계, 면역 체계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에너지이며 억누른 감정은 육체적 질환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명상은 이러한 감정 에너지를 해소함으로써 몸과 마음의 균형을 회복하고 내면 진동을 정화하는 매우 강력한 도구입니다.

두려움과 욕망이 올라올 때는 이렇게 해보세요:

  1. 감정을 인식하세요.
    → “지금 두려움이 올라오고 있구나.”
    → “지금 빨리 결과를 원하고 있구나.”
  2. 판단하지 마세요.
    → 이 감정은 나쁘지도, 틀리지도 않습니다.
    → 그저 관찰자로서 존재하세요.
  3. 호흡과 함께 몸으로 느끼고 흘려보내세요.
    → “나는 지금 이 감정을 완전히 허용한다.”
    → “이 감정은 떠오른 대로, 사라질 것이다.”


이렇게 명상을 통해 두려움과 욕망의 찌꺼기를 해소하면, 잠재의식은 드디어 ‘나는 이미 가진 사람’이라는 파동으로 이동합니다.


그리고 그 순간부터, 존재가 현실을 이끄는 기적이 시작됩니다.


Goldin, P., Manber, T., Hakimi, S., Canli, T. and Gross, J.J., 2010. People with anxiety disorder less able to regulate response to negative emotions, study shows. Stanford Medicine News Center. Available at: https://med.stanford.edu/news/all-news/2010/02/people-with-anxiety-disorder-less-able-to-regulate-response-to-negative-emotions-study-shows.html [Accessed 4 May 2025]




4단계. 존재로서 진동 유지 (라이프스타일 정렬)


결핍이 해소되면, 이제 우리는 드디어 "이미 이룬 자의 삶"을 살아내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이 순간부터 현실은 “얻는 것”이 아니라 “표현하는 것”으로 전환됩니다.


이미 이룬 자는 어떻게 살아갈까요?


정말로 간단합니다.


그저 그 사람이 하는 삶의 방식을 살 뿐입니다:


  • 아침에 일어나 여유롭게 산책합니다.
  • 명상으로 내면을 정돈하고 진동을 안정시킵니다.
  •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고, 좋은 음식을 먹습니다.
  • 시각화와 어퍼메이션은 의무가 아닌, 파동 유지의 보조 도구입니다.


그들은 ‘성과’보다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고, 조급한 행동보다 에너지 관리에 집중합니다.


진짜 행동은 여기서부터 시작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아니,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란 건가요?”
정답은 “아니요.”

오히려 이때부터 진짜 행동이 시작됩니다.


하지만 그 행동은 불안이나 결핍에서 나오는 “억지 행동”이 아니라, 존재의 진동에서 유도된 “의미 있는 행동”입니다.


  • 그냥 쓰고 싶어서 글을 쓰고,
  • 그냥 알고 싶어서 책을 읽고,
  • 그냥 기회가 보여서 움직입니다.


이런 행동은 번아웃이 없고, 결과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럽게, 나의 파동이 흘러가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요약하자면:


존재가 진동을 만들고,
그 진동이 행동을 만들고,
그 행동이 현실을 바꿉니다.


그러니 지금 해야 할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미 이룬 자의 라이프스타일을 살아내세요.




5단계. 현실 창조 (잠재의식의 통합적 실현)


이제 더 이상 아무것도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준비는 끝났고, 잠재의식은 이미 당신이 설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 욕망과 두려움은 해소되었고,
  • 진동은 이미 이루어진 존재에 맞춰져 있으며,
  • 행동은 의지가 아닌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발생합니다.


이 시점에서의 행동은 무언가를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존재의 확장과 표현일 뿐입니다.


결과는 필연입니다.


당신이 선택했던 가능성은 이제 물리적 현실로 변환되는 수순에 들어갑니다.

이건 운이 아니라 구조입니다.


  • 이미 “이루어진 삶”을 살아왔고
  • 이미 그 진동으로 세상에 말을 걸었기 때문에
  • 세상은 단순히 답장을 보내는 것뿐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더 이상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진짜 현실 창조는 이런 것입니다


"결과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다. 다만, 나는 존재했고, 그 존재가 결과를 불러왔다."


그 순간, 모든 것은 평온하게 일어납니다.
그리고 당신은 알게 됩니다.


“이제야 진짜 내가 만든 삶이 시작되었구나.”


마지막으로 절대 과정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우선적으로 이 개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만 시작할 수 있을 것이고 시작해도 여러분이 진정으로 원하는 목표가 아니라면 인내심은 금방 바닥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도 똥도 찍어먹어봐야 아는 “바보”라면 여러분의 여정을 응원합니다.


“우리는 목표만 선택할 수 있다.

문제 해결과 행동은 모두 잠재의식이 한다.

나의 일은 오직 진동을 유지하는 것이다.”


-젠틀맨

관리자
2025-05-01

중요한 아이디어는 무의식에서 나옵니다. 예술, 과학, 금융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무의식은 충분한 정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디어는 무의미해집니다. 의식을 정보로 가득 채우고, 이성적인 사고 과정을 끊어 버리세요.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바쁨을 추구합니다. 어린 시절부터 우리는 교육 받아왔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된다. 성공인들인 피 한 방울까지 짜내고 노력해서 그 자리에 갈 수 있는 거란다.“


우리는 무의식적인 바쁨에 대해 단순한 개인의 각성을 넘어서 집단 무의식과 시스템 전체를 해체하는 문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지금부터 차분히, 아주 깊이 풀어봅시다.


“왜 우리는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다"고 교육받아왔을까?”

> 집단 무의식이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서


모든 사람을 깨어있게 할 수는 없습니다. 깨우기보다는 조종하고 소비하는 편이 시스템 유지면에서 매우 바람직합니다.


산업혁명 이후, 자본주의 사회는 효율, 성과, 생산성, 경쟁을 중심으로 돌아갑니다.

이 시스템을 유지하려면 사람들이 끊임없이 부족함을 느끼고, 더 노력하고, 더 소비하고, 자신을 증명하려 애쓰는 상태여야 합니다.


그래서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게으르면 실패한다", "죽을 힘을 다해 노력해야 성공한다"는 식의 세뇌가 시작됩니다.


이건 단지 미덕의 교육이 아니라, 집단 무의식이 에너지를 빼앗고 국가 차원의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한 매커니즘입니다.


 다른 이유는 부모 세대도 그 시스템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부모 세대는 전쟁, 가난, 결핍, 취업난, 학벌 중심 사회를 겪으며 살아왔습니다.


그들에게 “존재로 살아도 돼”라는 개념은 없었습니다. 그건 단지 꿈 같은 소리였고, 현실은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노력해야 한다”, “죽어라 공부해라”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삶의 방식이 그들 인생의 전부이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건 그들의 방식이 최선이었기 때문이지, 그 방식이 '진실'이라서가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무의식적 바쁨 중독는 존재로부터의 도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쁘게 살아야 불안하지 않다고 느낍니다. 바쁘게 살아야 쓸모 있는 사람 같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가만히 있는 건 시간 낭비”라고 배웠습니다. 존재를 느끼는 침묵과 고요는 처음엔 공허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사람들은 바쁨과 과업으로 스스로를 채웁니다.

하지만 진실은 거꾸로야. 가만히 있어야, 고요해야, 비로소 존재의 진짜 힘이 떠오릅니다.


그렇다면 무의식적으로 바쁨을 추구하는 악순환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나가서 걸으세요.


가짜 바쁨을 뚫고 진짜 방향성을 찾기 위한 아주 단순한 3단계가 있습니다.


  1. 잘 걷기 – 매일 자연 속을 걸으며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보세요.
  2. 잘 운동하기 – 땀을 흘리면 생각도 흘러나갑니다.
  3. 잘 쉬기 – 온전히 쉬는 능력이 곧 일의 퀄리티입니다.


이 세 가지만 잘 해도,
마치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리듯 인생의 방향은 단순해집니다.


왜 우리는 바쁜 게 안전하다고 믿을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을 익숙함에 묶어두는 뿌리 깊은 두려움과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 길고 힘든 길이 더 가치 있다고 착각합니다.
  • 증명 중독이라는 이름의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갑니다.
  • “나는 아직 부족해”라는 거짓 믿음 때문에 끝없는 준비만 반복합니다.


결국, 우리는 ‘행동’이라는 탈을 쓴 도피를 선택합니다.
멈추는 순간 불안이 몰려오기 때문입니다.


잘 쉬는 능력이 없다면, 잘 일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잘 쉼 = 일하지 않을 때, 온전히 쉬는 힘.


진짜 쉼이란 휴식 중에 일 생각을 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의 감각을 충분히 음미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의 잠재의식은 방해받지 않고 가장 효율적으로 문제를 해결합니다.


더 이상 ‘지름길’을 말하지 마세요.


이제는 '지름길'이라는 이름으로 자기소진을 정당화하지 마세요.

형식적 행동, 가짜 성취, 끝없는 준비는 당신의 본질로 가는 진짜 길을 계속 미루는 것일 뿐입니다.


찰스 다윈의 예를 들어봅시다 찰스 다윈은 평생 규칙적인 산책과 깊은 휴식을 즐겼습니다.
그에게 일은 필요했지만, ‘여가’는 더 중요하고 본질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 조용한 산책 속에서 인류의 사고방식을 바꾼 위대한 진화론이 발생됐습니다.


가짜 바쁨을 멈추고 나가서 걸으세요.


일을 멈춘다고 당신이 뒤처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고요함 속에 진짜 ‘당신’이 드러납니다




명확성


대부분의 사람들이 소처럼 매일 꾸준히 긴 시간을 일하는 이유는 불확실성 때문입니다. 매사가 불안하기 때문에 쉬면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해 보세요.


당신의 삶을 바꾸고 싶다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당신의 기존 자아 시스템이 작동하는 ‘목표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꾸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목표를 바꾸려면 당신의 정체성을 뿌리까지 갈아 바꿔야 합니다.


정체성은 당신이 어떤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형성됩니다.


  • 당신의 모든 인풋(책, 인터넷, 대화)
  • 당신 주변 사람들
  • 당신의 평상시 생각들


점진적으로 변화하다가 갑자기 당신의 뇌는 전혀 다른 구조가 완성되고, 이전에는 절대 보이지 않던 완전히 새로운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한 번에 하나씩 바꿔보세요.


변하기를 선택했다면 시간이 해결해줄 영역입니다. 처음에는 잠재의식의 존재와 개념을 이해합니다. 이해한 지식으로 잠재의식을 바꾸기를 시도해보지만 무의식적인 과거 습관들로 변화가 어렵습니다. 꾸준히 반복적인 실패와 새로운 도전을 이어가다보면 경험적인 직관적 감각이 형성되며 순식간에 여러분이 원하던 잠재의식과 정체성이 완성됩니다.


당신을 완전히 새로운 상황 속으로 던져 내맡기세요.


  • 새로운 장소로 이사가세요.
  • 나쁜 습관으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을 떠나세요.
  • 비슷한 가치관과 이상향을 꿈꾸는 사람들과 네트워킹 하세요.


그러면 서서히, 당신도 그들 중 하나가 될 겁니다.


당신과 비범한 사람의 차이는 ‘극단적으로 애쓰는 행동’이 아닙니다. 그들은 행동할 동기가 필요 없는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건 그들의 정체성이며, 그들의 뇌는 이미 그렇게 살아가도록 프로그래밍되어 있습니다. 팁을 드리자면 여러분이 명확하게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정의하세요.


그 중 여러분이 현재에도 실천할 수 있는 것들이 분명 있습니다. (수면, 산책, 운동, 식습관 등등) 그 행위를 하며 이미 “된” 상태를 음미해 보세요.




소가 아닌 치타


일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들판을 뜯는 소와 같습니다.


  •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일관된 루틴을 반복합니다.
  • 마라톤처럼 일정한 페이스로 꾸준히 아웃풋을 냅니다.
  • 시간을 투입한 만큼의 돈을 받습니다.
  •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점점 활력을 잃고, 결국 번아웃이 찾아옵니다.


이 방식은 사회적으로 미덕처럼 포장됩니다.
하지만 ‘꾸준함’이라는 이름의 바쁨은
때로는 두려움에 기반한 무의식적 도피일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치타와 같습니다. 


  • 평소엔 조용히 에너지를 보존합니다.
  • 필요할 때, 결정적인 순간에 폭발적인 아웃풋을 냅니다.
  • 일한 시간보다 ‘무엇을 창출했는가’가 보상의 기준입니다.
  • 결과는 ‘시간’이 아니라, 생존에 도움이 되는 창의적 아이디어에서 비롯됩니다.


치타는 사냥을 위해 달릴 뿐,
그 외의 시간엔 충분히 쉬고 회복하며, 긴장을 풀고 대기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사람들은 말합니다:


“하루 종일 쉬고 있으면 게으르다.”
“시간을 낭비하면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규율이 부족하면 인생이 망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치타처럼 일하려 할 때마다 소처럼 살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립니다.


하지만 뇌는 진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할 때 도파민을 분출합니다.
즉, 창조하고 통찰할 때 진짜 에너지가 올라오는 구조입니다.


“많이 일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언제, 어떻게 집중하느냐가 진짜 차이를 만듭니다.”

당신은 에너지를 흩뿌리는 ‘소’의 방식으로 살 것인가, 필요할 때만 강력하게 움직이는 ‘치타’의 존재로 살 것인가?




직관적인 경험을 키우세요


가짜 바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조건 ‘애써야 한다’는 생각부터 의심해보세요.


가장 최악인 경우는 아무 결정도 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머무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정보를 알고도 실행하지 않는 것.
그리고 마지막, 가장 안타까운 경우는 실행했지만 그 안에서 '직관적인 경험'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확장하고 싶어합니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가 욕망할수록 더 큰 시련을 안겨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애쓰고, 더 조이고, 더 계획합니다.
하지만 같은 상황만 무한히 반복되죠.


그러다 결국 모든 걸 내려놓는 순간에 도달합니다.


우주는 단순하게 작동합니다.


뉴턴 제3법칙: 작용 반작용.

욕망은 결핍의 진동입니다.

두려움은 그 진동을 더 깊게 정체시킵니다.  결국 현실은 그 결핍을 반영한 상황만 계속 가져옵니다.


“이미 이룬 상태”의 사람은 조급하지 않습니다.

욕망하지도 않고, 불안해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존재로서 진동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은 눈앞의 3차원 현실만 보기 때문에, 머리로는 이해해도 몸은 거부합니다.


그래서 진짜 변화는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직관적인 경험으로만 가능합니다.

그 경험은 억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때가 되면, 정확한 타이밍에,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불교는 말합니다:

“모든 고통은 집착에서 오며, 해답은 내맡김이다.”


하지만 진짜 내맡김은 단순한 포기나 체념이 아니라, 온몸으로 두려움과 욕망을 느끼고, 그 에너지조차 껴안는 감각에서 시작됩니다.


당신이 그 감각을 체험하는 순간, 소위 말하는 ‘기적’은 자연스럽게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그제서야 당신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는 진리를 받아들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에 남는 답은 이것입니다:

"나의 존재 자체가 이유다."


이 단순한 진실에 돌아오지 못하게 하려고 세상은 바쁨을 강요하고, 애쓰지 않으면 불안해지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그 흐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 순간부터 당신은 더 이상 소가 아니라, 자신만의 리듬으로 사냥하는 치타로 살게 됩니다.


관리자
2025-04-28

당신의 삶이 괴로운 진짜 이유


삶이 힘든 건 현실 자체 때문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속 믿음이 세상을 그렇게 해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 지금 당신은 변화를 시작하기에 가장 완벽한 위치에 있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은 이를 깨닫지 못한 채 수년, 수십 년을 ‘갇힌 상태’로 살아갑니다.


알아차리지 못 한다면 당연한 결과물입니다. 한 사람에게 큰 변화나 계기가 없다면 국가, 사회, 문화 등에 의해 주입으로 형성된 자아에 의해 평생을 나로 착각하로 살아갑니다. 이러한 삶의 굴레가 대부분 사람들의 일생입니다.


인간의 성장 과정은 반복되는 패턴이 존재합니다. 100% 그렇다고 할 수 없지만 자연과 우주에서 “프렉탈”은 설명할 수 없지만 명백한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 보더라고 역사는 반복됩니다.

우리는 이것을 프렉탈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성장 과정을 프렉탈 원리로 파악한다면 성장 매커니즘인 본질을 깨달음으로써 더 쉬운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뉴스레터에서는 여러분의 인생을 정상에 도착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봅시다.


바로 시작해 봅시다.




사람은 '단계적으로' 성장한다 — 나선 역학 이론


Dr. Clare W. Graves가 개발한 존재의 단계 이론과 그에 파생된 나선 역학은 인간의 가치관과 세계관이 나선형으로 진화한다는 심리학 이론입니다.


각 단계는 당신이 무엇에 의미를 두는지,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는지, 어떤 기회를 인식하고 놓치는지까지 결정합니다.


Graves 박사는 인간이 단순히 "성격이 다르다"고 보지 않고, “인간의 의식은 진화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했습니다.

오랜 연구 끝에 인간의 가치관, 세계관, 정체성이 나선처럼 점차 더 복잡하고 통합적인 방향으로 진화한다는 걸 발견했고, 이를 “존재의 단계 이론”라고 불렀습니다.


나선 역학은 이걸 더 체계화한 모델입니다. Don Beck과 Christopher Cowan이 Graves 이론을 바탕으로 정교한 진화 모델로 확장한 게 바로 나선 역학입니다.


이 모델은 우리가 현실을 어떻게 인식하고 살아가는지에 대한 ‘의식의 색깔 지도’입니다.


존재의 단계 이론은 각 단계마다 특정 색상 코드로 구분됩니다.

각 단계는 ‘나(개인)’와 ‘우리(집단)’라는 양극을 번갈아가며 진화합니다.

이 단계들은 대부분 생존 중심, 결핍 동기 기반이며, 자신의 세계관이 절대적 진리라고 여깁니다.


순차적이지만 선형적이지 않습니다.
반드시 정해진 시간표 없이, 상황에 따라 상·하 진동은 언제든 가능합니다.


아무리 높은 의식이라도 과거 단계의 그림자가 작동할 수 있습니다. 

하위 단계는 무의식에 남아있습니다.


Yellow 이후는 진짜 ‘자기 중심의 창조자 단계’로 에고(사회에 의한 자아상, DMN)를 넘어 시스템 전체를 이해하고 흐름을 다루는 사람들의 의식입니다.


Yellow 이상에 도달한 사람은 각 단계의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며, 상황에 맞게 융합적 사고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부터 삶은 ‘반응’이 아니라 ‘설계’로 바뀝니다. 비로소 진정한 나로써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됩니다.




인생을 바꾸는 6단계 과정


  1. 알아차림


과거부터 반복되는 관습적인 반응을 알아차려야 됩니다.


예를들어 나 자신이 돈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의 패턴은 이렇습니다.

돈에 대한 욕망으로 의지 넘치게 행동 > 의지력이 금방 바닥나거나 중요성이 올라가기 떄문에 간절함 상승 > 간절함으로 인해 비이성적인 선택 > 다시 밑바닥 > 좌절 > 다시 도전 > 무한 반복.


악순환이 있다면 본질적인 행동 동기. 즉, 자신이 행동하게 된 원초적인 감정을 파악하야 합니다.



  1. 의인화


욕망하고 두려워하는 감정을 다른 나로 의인화하세요.

그 대상을 비난하지도 판단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 지켜보세요.



  1. 관찰


내가 왜 그렇게 욕망하고 두려워하는지 관찰해 보세요.

아무 견해없이 관찰하다 보면 원초적인 원인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원인이 어린 시절 가정 환경일 수 있고, 과거에 해소되지 못 한 콤플렉스일 수 있습니다.


인간의 뇌 구조는 두려움과 욕망의 감정을 느낄 때 생명에 위협적인 신호로 여기고 급한 불을 진압하는 것처럼 자리를 피합니다.


하지만 그런 반응이 반복될수록 우리가 두려워하고 욕망하는 에너지는 우리의 내면을 자유롭게 통과하지 못 하고 그대로 굳게 됩니다.

내면에 굳게 되고 정체된 에너지는 자신과 똑 닮은 상황을 그대로 끌어당깁니다.


내면에 굳은 에너지를 해체하고 흐르도록 하는 첫 단계는 관찰하기입니다.



  1. 추출 & 인정


충분히 관찰하고 나의 두려움 대상과 원인을 알았다면 있는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내가 이런 상황을 두려워 했구나…” 부정하지 말고 그대로 인정해 주세요.


고급 음식이나 술, 경이로운 작품이나 자연경관을 볼 때처럼 온 몸으로 나의 두려움과 욕망을 느껴주세요.


나의 두려움과 욕망을 미세한 감각 하나까지 동원해서 느끼고 인정하세요.



  1. 내맡김


나의 두려움과 욕망을 미세한 감각 하나까지 동원해서 느끼고 인정하면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4단계까지 따라왔다면 그동안 억제된 감정이 분출되면서 서럽게 울 수도 있고 내면이 텅 빈 깃털처럼 가벼운 상태가 됩니다.


감정이 해소된 순간을 온전히 음미해보세요.



  1. 사랑 베이스 선택


마지막으로 여러분이 같은 상황에 대해서 사랑을 베이스로 선택하는 것입니다.


다시 돈을 예시로 들자면 예전에는 “좋은 집, 차를 가지기 위해서. 남들보다 잘 살기 위해서.” 였다면

“럭셔리한 환경을 그저 누리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 자유로운 삶을 온전히 누리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와 같이 인과관계를 뒤집어야 됩니다.


“돈이 있어야 자유를 누릴 수가 있다가 아닌 자유로운 존재가 되면 돈이 따라온다.” 

“운동을 해야 건강해진다가 아닌 건강한 존재가 되면 자연스럽게 운동은 생활화 된다.”




진짜 변화는 정보가 아니라 '정체성의 전환'에서 온다


사람들은 보통 정보를 많이 알면 인생이 바뀔 거라 생각하지만, 변화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정체성의 변화에서 옵니다.


정체성은 어떤 정보에 노출되느냐에 따라 형성되기 때문에


  • 당신의 디지털 환경
  • 팔로우하는 계정
  • 주변 사람들
  • 읽는 책과 듣는 이야기를 바꾸는 게 시작입니다.




결론: 성장 단계는 반복된다


삶은 나선처럼 순환한다.
질서 → 의심 → 혼돈 → 성장 → 다시 새로운 질서.
이 과정을 의식적으로 알아차리고 통과할 때, 다음 레벨의 나가 됩니다.

ABOUT ME

Who is GENTLEMAN?

자유를 추구하는 인간일 뿐.


안녕하세요, 젠틀맨입니다.
저는 마인드셋과 건강의 본질을 추구하는 작가입니다.


이전에는 피트니스 인플루언서(낭만피지컬)과 웹 에이전시 사업을 운영하는 대표, 그리고 트레이더로 활동했습니다. 지금은 작가라는 수단을 통해 여러분의 사명을 재발견하고, 건강을 되찾으며, 창의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즐길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사업과 트레이딩으로 수백억 수천억 순이익을 달성하지 못 했지만 활동하면서 건강을 챙기지 못 해 밑바닥을 경험했습니다. 이때 밑바닥을 경험하면서 가장 기본 중의 기본은 정신적 건강, 육체적 건강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여러분이 좋아하는 일을 하기 전에 가장 본질은 건강입니다. 하지만 한 기업의 CEO이면서 하루 종일 차트를 봐야하는 트레이더로서 건강을 어디서부터 챙겨야할지 모를겁니다.


정말 죽어라 노력해서 결국 정상에 도착해도 몸과 정신이 망가졌다면 여러분은 그 트로피를 결국 온전히 누리지 못 할겁니다. 그러한 비극을 경험하지 않도록 저 젠틀맨이 돕겠습니다. 정신 건강과 신체적 건강이 완전 밑바닥일 때부터 상위 0.3%의 피지컬과 온전한 나로서의 의식 확보까지 모든 노하우를 제공합니다. 하루 30분이면 충분합니다. 여러분의 미래를 위해 투자해 보세요.


시간이 없지만 본질을 통해 하루 30분으로 마인드셋, 건강, 라이프 스타일의 자유를 어떻게 성취하는 법을 저에게 배우고 싶다면 "30분 멘탈피지컬" 프로그램을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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